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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숲을 복지자원으로](3)숲으로 가는 사람들
도심 가까운 숲길 걸으며 우울감 떨치고 건강 챙긴다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5. 10.23. 00:00:00

서귀포자연휴양림을 찾은 오세복(왼쪽)·김태훈씨가 편백나무 숲아래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진선희 기자

중장년·노년층 휴양림 찾아
면역력 높이는 치유활동 잇따라
초록경관·피톤치드·음이온
심신 회복에 휴양 효과 탁월

"잘 있었냐?" 오세복(74·서귀포시)씨는 오고가는 숲길에서 만난 편백나무에게 그렇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나이를 먹다보니 우리와 비슷한 수령의 나무들이 모두 친구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오씨는 제주살이 10년을 이어오는 동안 미처 몰랐다. 이토록 즐거움을 주는 숲이 곁에 있는 줄 말이다.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서귀포자연휴양림으로 향한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발길이 닿는 휴양림에서 종일이다시피 산다. 숲길을 걷고, 나무 아래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차 한잔 마시고, 숲에서 가까워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세 하루해가 진다.

▶ 65세 이상 노인 이용객 증가세

서귀포시 지역에 있는 서귀포자연휴양림·붉은오름자연휴양림 등 '자연 속 휴식처'인 두 곳의 휴양림을 이용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다. 어린이와 청소년에 비해 청년과 중장년 이용 비율이 훨씬 높다. 이는 나이들수록 좀 더 건강하게 살고 싶은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엔 노약자들이 걷기 편한 숲길을 뒀다. 1.1㎞에 이르는 생태관찰로, 비슷한 길이의 건강산책로가 대표적이다. 경사가 완만하고 야자매트가 깔려있는 곳으로 찬찬히 걸으면 더 좋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에 조성된 3.2㎞ 구간의 상잣성 숲길도 노인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목장 경계용 돌담인 잣성이 제법 길게 남아있고 양하 같은 식물이 자라고 있어 중장년층들에게 자연스레 이야깃거리도 던진다.

숲은 우리에게 말없이 선물을 안겨주는 곳이다. 숲길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녹색은 눈의 피로를 풀어주고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숲의 얼굴은 인간의 주의력을 자연스럽게 집중하게 만들고 피로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있다.

피톤치드가 주는 이점도 빼놓을 수 없다. 피톤치드는 나무가 해충과 상처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생성하는 물질을 말한다. 숲 속 공기에 흩어져있는 피톤치드는 인간의 후각을 자극해 마음의 안정과 쾌적감을 가져온다. 흡연에 대한 갈망도 감소시킨다. 일상생활에서 산성화되기 쉬운 인간의 신체를 중성화시키는 음이온 역시 숲에 많은 양이 존재한다.

숲 안에 깃든 여러 생명들이 들려주는 소리는 계절마다 음색을 달리하며 마음을 편안하게 이끈다. 우울증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되는 햇빛을 오랜 시간 쬘 수 있는 곳도 다름아닌 숲이다.

서귀포자연휴양림 탐방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는 가을 단풍.

▶ "몸과 마음 편안해지고 기분 전환"

제주금연지원센터는 올해 처음으로 한라생태숲에서 숲을 활용한 금연 캠프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의지만으로 금연하기 어려운 흡연자를 대상으로 금연 치료와 집중 상담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참가자들은 4박 5일 일정 중에서 하루를 숲에서 난다. 한라생태숲을 찾아 숲 해설을 듣고 걷기 명상, 먹기 명상, 웃음치료, 차 명상 등으로 짜여진 숲 치유 프로그램을 체험한다. 숲 치유 프로그램은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숲 향기에 심신이 이완되고 기분 전환을 불러온다는 반응이 잇따랐다.

산림치유는 이처럼 숲에 존재하는 다양한 환경요소를 활용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활동을 말한다. 그동안 여러 연구를 통해 산림치유 효과가 알려져왔다. 숲을 30분간 산책했을 때 심박변이도가 안정 상태를 보이고 긍정적인 감정과 인지도가 향상된다. 도심 경관을 바라볼 때보다 푸른 산림 경관과 마주할 경우 안정시 뇌에서 발생하는 알파파가 증가한다. 우울 증상, 혈압, 아토피피부염과 천식 증세 완화에도 숲이 도움을 준다.

서귀포자연휴양림은 중장년층이 걷기 좋은 숲길이 잘 갖춰져 있다.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에 사는 김태훈(67)씨는 5년째 서귀포자연휴양림에서 여가를 보내고 있다. 한라봉 농사를 짓고 있는 김씨는 매년 5월부터 10월말까지 거의 매일 집과 휴양림을 오간다. 차로 달려 왕복 90분쯤 걸리지만 숲에서 만나는 기쁨에 비하면 먼 길이 아니다. 아침 일을 끝내고 휴양림에서 반나절을 보낸 뒤 다시 밭으로 돌아가 저녁 일을 마치는 그는 숲에 10분만 앉아있어도 피곤이 풀린다고 했다. 전망대로 향하는 숲 속 오솔길, 어제와 다른 단풍 빛깔이 화제에 올랐다. 휴양림이 품고 있는 생명체를 훤하게 꿰뚫고 있는 그였다.

노약자들이 걷기 편한 붉은오름자연휴양림 상잣성숲길.

▶ 능력 닿는 범위에서 다양한 숲 체험

제주도가 지난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제주도내 혼자사는 노인은 1만명이 넘는다. 혼자사는 노인의 25.6%는 우울증을 앓고 있고 66.1%는 관절염·신경통 질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혈압·심장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도 60.1%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이나 가족과 자주 만나지 않고 경로당이나 복지관 등 사회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노인이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숲은 부작용이 없는 치료약이고, 돈 주고 사지 않아도 되는 보약이며, 모든 사람을 받아주는 종합병원"이라는 말이 있다. 우울증을 겪는 홀몸노인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숲은 그들에게 좋은 동반자가 될 수 있다. 숲길을 산책하거나 편한 곳에 자리잡고 앉아 물소리, 새소리만 들어도 된다. 나무가 뿜어내는 여러 향기를 맡고 초록빛 경관에 눈을 돌려도 그만이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할 것 없이 능력이 닿는 범위 안에서 여러 유형을 체험하면 된다. 몸의 상태에 맞춰 30분이나 1시간, 2㎞나 5㎞ 거리를 걸을 수 있다. 피곤할 때는 언제든 쉬고, 목이 마르면 차나 물을 마시며 숲이 주는 혜택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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