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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를 이끌어온 선각자들](9) 이선자 관광통역안내사
환갑에도 현역… "양적 성장만 추구한 관광정책 돌아봐야"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6. 06.02. 00:00:00

관광통역안내사 이선자씨는 제주관광시장의 부침을 함께 겪어온 산증인이다. 사진은 20대 초반에 제주 여행업계에 입문한 이선자씨는 올해 환갑의 나이에도 현역 관광통역안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대 여행업계 입문 제주관광시장 부침 겪은 산증인
80년대 초반 관광안내 교범 '제주관광안내서' 펴내
고수입 정규직 대우 옛말… 지금은 비정규직 신세
"관광객만 많이 들어오면 된다는 정책이 문제 초래"


"신혼여행을 온 새내기 부부가 손을 잡는 것도 부끄러워하던 때가 있었지요. 사진기 앞에서 웃으라고 해야 웃고, 붙으라고 해야 붙던 때였지요."

제주도가 현대적 의미의 관광지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70년대 관광시장이 움트기 시작한 제주도는 80년대와 90년대에 신혼여행과 일본인 관광객으로 호황을 이뤘으며, 2000년대에는 관광객이 소폭 증가했지만 정체기를 보였다. 이어 2010년 이후 현재까지는 매년 1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밀려들면서 양적인 면에서만 보자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0대 초반 꽃다운 나이에 여행업계에 입문해 올해 환갑이 되는 이선자씨는 이러한 제주관광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이선자씨가 일본어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1982년 펴낸 '아름다운 제주-제주관광안내서'.

1976년 제주관광여행사에 입사한 이씨는 1978년 국내 관광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국내 여행안내사 자격증을 첫 시행하자 제주도에서 30~40명 정도가 응시했는데 2명만 합격했어요. 예비고사 만큼이나 어려웠지요." 이씨는 그 2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제주를 찾는 관광객은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제주관광여행사를 통해야 했다. 이른바 '반관반민' 여행사에서 가이드로 활동하던 이씨는 지금은 고인이 된 박현식씨를 눈여겨보게 된다. "제주와 일본을 연결하는 국제선 항공노선이 운항되고 있었지만 일본인 관광객은 드문 때였지요. 관광지에서 가끔 마주친 박현식씨가 제주도의 유일한 일본어관광통역안내사라는 걸 알고 가능성을 봤지요."

1981년 상경해 일본어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씨는 제주관광여행사를 퇴사한 뒤 관광 관련 책자를 발간하는 한국관광문화연구소에 입사했다. 이곳에서 이씨는 제주관광 안내 교범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제주-제주관광안내서'를 박현 한국관광문화연구소장과 함께 공저로 펴냈다. "관광안내원이 갖춰야 할 기본 지식과 함께 제주도의 개괄적인 내용을 담은 제주관광 안내 지침서였지요. 책을 본 후배들로부터 많은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요."

1983년 다시 귀향한 이씨는 한진관광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인지 1984년부터 일본에서 제주관광 상품이 대거 판매되기 시작했다. 여성 일본어관광통역안내사가 4~5명에 불과한 때라 수입이 꽤 컸다. "우리 남편 월급이 40만원 안팎 정도였을 때 저는 100만원 이상 벌었어요. 제주대학교 관광 관련 학과와 일문과 출신 가이드들이 대거 배출하게 된 계기가 됐죠."

2000년대 중반 제주공항 주차장 내 전세버스 앞에서 동료들과 함께한 이선자씨(왼쪽에서 세번째).

제주시 연동 소재 그랜드호텔(현 메종글래드제주) 인근 상점가에 일본어 간판이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다. "일본인 관광객들은 저녁 첫 식사 때마다 '엔까이(えんかい)'라 불리는 파티를 벌였어요. 1인당 평균 50만엔씩 가지고 와서 모두 쓰고 갈 만큼 씀씀이가 어마어마했지요." 이씨는 당시를 1년 365일 중 360일 근무했던 때로 기억하고 있다.

한진관광에서 10년간 근무한 이씨는 1993년 코오롱여행사로 옮겨 다시 10년간 일본어가이드로 살았다. 이씨와 제주관광에 위기가 닥친 건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기에 들어가면서부터다. "일본인 관광객이 와도 낮에만 쓰고 밤에는 안 쓰는 경향이 두드러졌어요. 일본 경기 침체와 성매매특별법, 에이즈 공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이었지요."

1990년대 코오롱여행사에서 일본어관광통역안내사로 근무할 당시 성산일출봉에서 일본인 관광객들을 안내 중인 이선자씨. 당시만 해도 회사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그러나 일본어 가이드는 계속해서 배출돼 2010년에는 250명으로 불어났다. 가이드가 늘어난 만큼 수입은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여행사들이 가이드 월급과 4대보험료 등의 부담을 피하기 위해 가이드를 직접 고용하지 않고 계약직으로 바꾸기 시작했지요." 말이 좋아 프리랜서이지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것이었다. 월급이 없어지고, 쇼핑 수수료가 수입이 전부였다. 이후 많은 일본어관광통역안내사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씨도 2012년부터 중국어관광통역안내사로 일하고 있다.

제주관광의 부침에 따라 이씨의 삶도 큰 변화를 겪어야 했다. 다만 관광객이 증가하는 만큼 경제적 이득도 비례했던 가이드들의 삶이 지금은 과거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지만 관광종사원들의 수입은 생계에 위협을 겪을 만큼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관광시장 성장에 따른 혜택이 제주도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최일선에서 활동하는 관광종사원들도 비켜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주의 관광정책이 제주도민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제주도의 관광사업체만을 위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제3의 세력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어요. 누가 벌든지 어차피 버는 것이고, 관광객이 많이 들어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 양적 성장 만을 추구해온 관광정책이 지금의 문제를 일으킨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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