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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路 떠나다]11일 개통하는 남원 의귀마을 4·3길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입력 : 2016. 09.09. 00:00:00

오는 11일 개통하는 남원 의귀마을 4·3길은 집단학살터 등 뼈아픈 역사의 흔적이 살아있는 현장을 만날 수 있는 코스로 짜여졌다. 사진은 제주4·3사건 당시 마을 주민들의 은신처로 이용했던 영궤.

동광마을 이어 두번째 4·3길
신산모루·민오름 주둔소 코스
학살터 등 발닿는 곳마다 사연
옷귀마테마타운 등 생활상도


붉은 동백꽃 피어난 마을 돌담길. 사진=제주도 제공

뚝뚝 떨어지는 빨간 동백꽃. 어떤 이는 아름답다 할테지만 어떤 이는 슬프다 할 것이다. 꽃째로 떨어지는 동백꽃은 4·3사건 당시 영문도 모른채 저버린 수많은 영혼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제주도민들에게 69년 전 발생한 4·3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렇기에 제주 곳곳 4·3사건의 완전한 해결을 위한 작업들이 이어지고 있다. 4·3길 조성도 그 중 하나다. 지난해 처음 개통된 동광마을의 4·3길에 이어 올해엔 남원 의귀마을 4·3길이 공개된다.

남원 의귀마을은 남쪽으로 넉시오름이 아담하게 솟아있고 마을 주변으로 서중천과 의귀천이 흐르는,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에 위치한 마을이다. 조선시대 1300필 이상의 말을 조정에 바친 헌마공신 김만일의 고향이기도 하다. 4·3사건 때 수많은 의귀마을 사람들은 군경토벌대에 잡혀 희생되거나 육지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했다. 이 중 대부분이 지금까지 생사를 알 수 없는 행방불명 상태다. 현재까지 의귀마을 내 4·3 희생자는 250여명으로 추정된다.

남원 의귀마을 4·3길은 마을 길을 따라 의귀마을복지회관과 의귀초, 현의합장묘, 송령이골을 거치는 '신산모루 가는 길'과 민오름 주변 숲길로 이어진 '민오름 주둔소 가는길' 이렇게 두 코스가 운영된다. 두 코스 모두 7km로 약 2시간 거리로 발 닿는 곳마다 아픈 사연이 묻어난다.

'신산모루 가는 길'의 한 지점인 의귀초등학교 동녘밭은 그저 흔한 마을길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1949년 4·3사건 당시 군인들에 의해 80여명의 주민들이 생명을 뺏긴 집단학살터다. 주민들은 두 차례에 걸쳐 이곳으로 끌려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 시신들의 수습도 허용되지 않아 피해자들은 흙만 대충 덮인채로 오랫동안 방치됐다고 한다.

학살터였던 의귀초 동녘밭

희생자들은 남원읍 협의합장묘 옛터에 잠시 매장됐다가 2003년 현재 협의합장묘 자리에 안장됐다. 유골 발굴 작업시 유해들이 서로 마구 엉클어져 있어 수습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이미 흙으로 돌아간 유해들은 '흙 한줌'으로 유골을 대신해 묻혔다. '신산모루 가는 길' 코스 끝무렵에 위치한 현의합장묘 묘비엔 절절한 아픔이 묻어난다.

"거동 불편한 하르방 할망, 꽃다운 젊은이들, 이름조차 호적부에 올리지 못한 물애기까지 악독한 총칼 앞에 원통하게 스러져 갔나이다.

허공 중에 흩어진 영혼 짓이겨져 뒤엉킨 육신 제대로 감장하지 못한 불효 천년을 간다는데 무시로 도지는 설움 앞에 행여 누가 들을까 울음조차 속으로만 삼키던 무정한 세월이여. '살암시난 살아져라' 위안삼아 버틴 세월이여. 앙상한 어욱밭 방엣불 질러 죽이고 태웠어도 뿌리까지 다 태워 없애진 못하는 법 아닙니까. 봄이면 희망처럼 삐죽이 새순 돋지 않던가요."

'민오름 주둔소 가는길' 코스에서는 강경진압작전을 피해 마을 주민들이 은신했던 영궤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헌마공신 김만일묘, 옷귀마테마타운, 쉼터, 민오름 공동목장 등도 자리해 소와 말을 치던 옛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남원의귀마을 4·3길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의귀리복지회관에서 열리는 개통행사를 시작으로 탐방객들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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