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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록담
[백록담]세계,국제 말고 동네,마을의 부활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7. 03.13. 00:00:00
객석엔 빈 자리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전야제와 개막식을 그득 채운 청중을 보자면 행사는 성공적인 듯 했다. 지난달 20~23일 진행된 2017제주국제합창축제&심포지엄. 제주도에서 지원한 보조금 관리에 문제가 생겨 중단됐던 제주국제합창제가 8년 만에 재개됐다.

민간 보조 사업으로 도비를 지원한 제주도는 이 행사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세계적인 음악 브랜드로 성장해온 제주국제관악제에 버금가는 국제합창축제를 만들어 제주를 알리겠다." 제주지역의 합창 문화 기반을 다지며 26회까지 치러온 탐라합창제가 작년에 예산 문제 등으로 끊겨야 했던 현실에서 국제합창제의 등장은 제주 합창에 활력을 불어넣을 기회로 기대를 걸만 했다. 하지만 문화축제 없는 2월 '비수기'의 한계를 넘겠다며 추진된 국제합창제는 준비가 덜된 모습이었다.

탐라전국합창축제를 국제행사로 확대한 예전의 제주국제합창제를 돌이켜보자. 탐라전국합창제와 제주국제합창제로 이어지며 모두 합쳐 100곡이 넘는 제주 소재 창작곡이 쏟아졌다. 도내외 실력있는 합창단들의 경연도 볼거리였다.

수년 만에 다시 얼굴을 드러낸 이번 국제합창제는 어땠나. 국제 행사라고 했지만 해외에선 3개팀이 전부였고 그마저 합창단 편성으로 보기 어려운 규모였다. '해녀'를 주제로 내건 전야제는 틈날 때마다 해녀문화 홍보 영상물이 흘렀지만 정작 해당 주제를 담아낸 무대는 빈약했다. 대중성을 갖춘 축제 성격의 합창 공연이 아니라 한국합창총연합회가 주도한 서른 네번째 한국합창 심포지엄에 무게가 쏠린 듯 했다.

제주국제합창제는 연초 제주도가 '문화예술의 섬 조성 6대 전략'중 하나인 '제주 문화 브랜드의 세계화' 사업으로 제시한 행사다. 지난해 8월 제주도의 제3회 제주세계섬문화축제 개최 발표에 이은 또하나의 '부활'이었다.

제주도정이 불을 지피고 있는 문화계의 '부활' 바람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이름만 거창한 국제, 세계보다 동네, 마을이 품은 가치가 더 귀해지는 시절이 아닌가. 한 해 섬 밖에서 1500만명이 찾는 제주는 관광도시로 커오는 동안 구석구석 관광자원이 쌓여왔다. 여기에 더해 갖가지 공연·전시와 축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 된지 오래다. 관광객을 유치한다며 부단히 축제 같은 걸 생산해내곤 하는 다른 지자체와는 상황이 다르다. 제주도가 애써 세금을 써가며 부활이든, 새로운 축제든 문화 행사를 벌일 경우 그만한 설득력이 없으면 도민들에게 외면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4일 제주시 한림읍 한수리에서 펼쳐진 영등환영제는 인상 깊었다. 3년 전부터 해녀 등 그 마을 사람들이 음력 2월 영등달에 맞춰 집집마다 정성을 모으며 복원한 '동네 축제'였다. 주민들은 아침부터 해 질 녘까지 굿청에서 자리를 뜨지 않은 채 한 해의 소망을 빌며 춤추고 노래했다. 방문객들에겐 그 장면들이 저절로 값진 제주문화 체험이 됐다.

근래에 '제주 문화예술의 섬'이 세간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것이 무언가를 자꾸 만들어내는 일로 흘러서는 안될 듯 싶다. 제주는 화산섬이라는 격절된 환경이 빚어낸 자연·문화 자원만으로 이국성을 띤다. 인공의 때가 덜 묻은 그 자원들이 바다 건너 사는 이름난 예술가들을 제주로 불러모았고 지금도 끌어들이고 있다. 문화행정은 그곳으로 향하는 길목을 안내하고 닦아주는 역할을 맡으면 될 것이다. 개발 열풍속에 섬의 자원을 지켜내는 일, 지역에서 문화적 토양을 일궈온 예술인들의 활동을 지원하는 일이 제주도의 '문화예술의 섬 전략'이 되어야 한다.

<진선희 교육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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