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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시작하며
[하루를시작하며]지금 읽는 그 때의 시절가조
고춘옥 hl@ihalla.com 기자
입력 : 2017. 05.10. 00:00:00
훤칠한 키의 한라산이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던 것이 오래전 일이 되고 있다. 제주 섬은 연일 미세먼지 투성이다. 선거판 유세몰이하는 말 만큼이나 먼지가 뿌옇게 내려 쌓이는 사람의 시절을 거쳐 이제 또 물것들이 많아지겠다.

'한 몸이 살자 하였더니 물것 겨워 못 살겠구나./ 피 껍질 같은 작은 이, 보리알 같은 수퉁니, 굶주린 이, 막 알에서 깨어난 이, 작은 벼룩, 굵은 벼룩, 잔 벼룩, 왜(倭)벼룩, 뛰는 놈, 기는 놈에 비파 같은 빈대 새끼, 사령 같은 등에, 각다귀, 사마귀, 흰 바퀴벌레, 누런 바퀴벌레, 바구미, 고자리, 부리 뾰족한 모기, 다리 기다란 모기, 여윈 모기, 살찐 모기, 그리마, 뾰록이, 심한 당(唐)벼룩에 더 어려워라./ 그 중에 참다 못 견딜 손 오뉴월 복더위에 쉬파린가 하노라.'

주권도 없고 먹을 것도 부족한 시절에 사람을 괴롭히는 '물것'이 많아서 살기 어렵다고 호소하는 노래다. 사설시조의 특성상 '물것'은 단순히 '피를 빨아먹는 벌레의 총칭'으로 보기보다는 '백성을 착취하는 온갖 부류'들이 너무 많아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인간의 내면화된 시선으로 읽다보면 당시 동양의 서민의식으로는 외래종 포함 25종이나 되는 해충일지라도 저도 살자고 피 좀 빨아먹는 놈들이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쳐도 제일 못 견디는 것은 가만 있어도 열 받는 오뉴월 복더위에 앵앵거리며 끈질기게 따라붙는 쉬파리로 '시대를 이끈다는 허세 띤 말만 앞세우는 사대부와 세금을 징수하러 다니는 관리'를 일컫는 말로 보인다. 올해 대선정국 역시 주체적인 국민촛불집회 이후임에도 불구하고 시행가능성이 희박한 선거공약들이 난무했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후진 정치 판세 역시 종결되지 않았고, 논점은 매번 국민의 혈세가 더 많이 필요하다로 흘렀고, 그에 따라 표심은 좋은 정치가보다 이익이 더 많은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있었다. 그렇게 '민주'는 현실적인 선택이 주를 이루었다. 현대시민사회의 리더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가치를 몰랐고, 때문에 '의무에 따르는 권리가 제대로 보장되는 구체적인 방법론'은 제기되지 않았다. 험악한 외세 배경 속에서도 권력을 잡기 위해 서로 배신했고, 오랫동안 '君君臣臣'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이 땅의 주인이 되기에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바독바독 뒤얽어진 놈아 제발 네게 빌자 냇가에는 가 서지 마라./ 눈 큰 준치, 허리 긴 갈치, 두루치는 메기, 칭칭 휘감는 가물치, 부리 긴 꽁치, 넓적한 가자미, 등 굽은 새우, 걸네만한 곤쟁이 그물인 줄 알고 풀풀 뛰어 다 달아나는데 열없이 생긴 오징어만 뒹구는구나./ 진실로 네가 와 서있으면 고기 못 잡아 큰 일이러라.'

그물같이 옭아매는 정부의 수탈로 인해 먹을 것이 부족한 백성들이 냇가의 고기라도 잡아 목숨을 연명하려는 데 거기까지 따라와 세금을 노획하는 관리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판세를 잘 읽어낼 줄 아는 이, 행동이 민첩한 이, 역전시킬 줄 아는 이, 윗전에 살갑게 감길 줄 아는 이, 톡톡 쏘는 말로 대처하는 이, 믿음직하게 풀어나갈 줄 아는 이, 굽실거리며 행동하는 이, 몸뚱이는 작지만 걸쭉하게 큰 이익을 건져 올리는 이들은 수단껏 그물에 걸리지 않고 달아나는데 다리가 열이 안 되는 오징어인 골뚜기, 즉 지혜가 모자란 서민들만 애꿎게 세금을 뒤집어쓰고 밑바닥에 나뒹굴고 있노라 하소연하는 노래다. 주체의식은 있으나 선택적 사항에 한계를 느끼는 새 정국의 국민들 역시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고춘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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