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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담론]도로명 주소로 빛 본 환해장성
입력 : 2017. 08.24. 00:00:00
중국에 인위적으로 쌓은 만리장성이 있다면, 제주에도 연안의 해안선을 따라 주위를 돌며 쌓은 환해장성(環海長城)이 있다.

2700㎞에 달하는 만리장성의 길이와 규모, 부대시설에 비하면 너무나 보잘 것 없지만 제주도 해안가 300여 리(약 120㎞)에 걸쳐 축조된 환해장성은 지금 자연해안선이 251㎞임을 볼 때 거의 섬 절반에 걸쳐 방어벽으로 구축되었던 것이다.

과거 환해장성은 처절한 생존의 보루로서 1270년인 고려 원종 11년에 진도의 삼별초를 막기 위해 개경측(정부군)인 시랑 고여림과 영암 부사 김수를 보내어 축조된 것이 조선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는 성벽의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였다.

김상헌이 지은 '남사록'이나, 김석익의 '탐라기년'을 보면, 왜적들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섬을 둘러싼 석벽(石壁)이 바다를 품은 천연의 요새로 작용하였다는 기록과 조선 헌종 11년(1845) 6월에 영국 선박이 우도(牛島)에 1개월 정도 정박하면서 섬 연안 수심을 측량하고 돌들을 모아 회(灰)를 칠하여 방위를 표시하자 당시 권직목사는 마병(馬兵)과 총수(銃手)를 총동원하여 만일의 변에 대비하였고, 그해 겨울 도민을 총동원하여 환해장성을 수축하였다는 기록도 보인다. 이것은 변방 제주를 지켜내기 위한 중요한 방어유적의 하나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지금 온평리, 행원리, 한동리, 동복리, 북촌리, 애월리, 고내리 등 14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때 보수했던 성으로 추정된다.

이런 환해장성이 최근 '환해장성로'란 이름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 길은 신산해수욕장에서부터 온평, 신산리까지 약 10.3㎞에 달하는 도로명 주소로 이용되면서 올레길 1~2코스 어간에서 해안누리 길의 하나로서 유명해졌다.

그것은 장성의 모습이 중국이나, 타지방에서 보이는 반듯한 석회암을 쌓아 올린 성곽이 아니라 해안가를 따라 검은 현무암으로 듬성 듬성 높게 언저 놓은 모양이 주변 밭담과 어우러져 정겨운 현상으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블로그 등 SNS에서도 환해장성이 쉽게 검색이 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현상만으로도 700여년 전부터 외침의 역사가 있었던 군사시설이란 걸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듯하다.

하지만 현실은 도로명주소에 드러난 구간만이 방어역사를 설명해 줄 뿐 제주의 절반을 돌고 있는 환해장성 14개소 중 4개소는 문화재 지정조차 안되어 훼손에 노출되어 있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복원한 일부는 제주원형과는 전혀 다른 성벽을 만들어 마치 새로운 역사를 다시 쓰듯 보전이란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특히 행원환해장성 같은 경우는 지정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안내판은 언제 세워졌는지 바닷바람에 사라진 글씨 없는 철판이 청승맞게 서 있을 따름이다. 그러다 보니 올레길을 걷는 관광객들에 의해, 해안가를 중심으로 다시 모여드는 터전민들에 의해 환해장성 위에 솟대 세우기, 소원탑 쌓기 등 당초 문화유산이란 가치와는 다르게 관리되고 있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제주섬 안에는 380여개의 지정문화재와 1500여개 이상의 비지정문화재 들이 산재되어 만년의 누적된 역사를 읽어볼 수 있는 곳이다. 이것만으로도 가장 제주형 국제자유도시를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주형 랜드마크는 고층빌딩, 중산간 리조트개발에 초점되어 온 지 근 10여년이 지나고 있다. 앞으로 제주의 자산은 개발이란 초점이 아닌, 기존의 역사문화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린 것은 아닐까. <오수정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정책자문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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