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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해녀 밥상을 탐하다](3)해녀들의 '낭푼 밥상'
고난한 삶 속에서도 사랑·나눔의 정신 담은 '낭푼 밥상'
이현숙 기자 hslee@ihalla.com
입력 : 2017. 10.17. 00:00:00

김지순 명인과 양용진 원장이 재현한 해녀들의 밥상. 사진=양용진 원장 제공.

둥글게 둘러앉아 먹어 ‘두레반 식탁’ 부르기도
보리밥 밥상에 담겨진 공동체 의식·문화 원형

오랜 세월 바다와 함께 공존해 온 해녀들의 생명의 힘은 가족애, 책임감 등에 있었지만 그들을 버티게 해준 밥상에는 늘 '낭푼'이 있었다. 음식을 담거나 데우는 데 쓰는 그릇을 말하는 표준어로는 '양푼'이지만 제주에서는 '낭푼'으로 불렸다. 때론 상이 아니라 바닥에 놓여 있는 채로 물에 밥을 말아 장아찌 얹어 소박하게 먹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낭푼'은 늘 그들과 함께였다.

▶사랑·나눔의 정신이 있는 '낭푼'

제주의 고난한 삶이 담긴 낭푼밥상은 오랜 세월을 이 섬에서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힘들다. '낭푼'은 둥근 놋그릇이나 나무로 만든 남박을 말하는데 여기에 밥을 담아 가운데 놓고 온 식구가 같이 먹어왔다. 성산읍 지역 한 해녀는 "낭푼에 떠놓은 밥에 마늘(마농)지와 반치지(파초지) 하나 있어도 좋았다"며 "물질을 하기 전에는 밥을 많이 먹지 않고 돌아오면 얼른 밥을 물이나 된장국에 말아서 먹었을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낭푼'이라는 그릇은 제주사람의 공통체 의식과 문화를 잘 보여준다. 제주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나무와 유기재질로 된 큰 밥그릇을 상 가운데 두고 가족수대로 국과 수저를 놓아 공동으로 밥을 퍼 먹었다. 밥을 퍼놓은 그릇의 이름을 따서 이 밥상을 '낭푼 밥상'이라 부른다. 또 둥글게 둘러앉아 식사한다는 의미의 '두레반 식탁'이라고도 표현한다. '낭푼 밥상'은 제주음식문화의 핵심, 제주의 모든 것이 이 밥상에 함축되어 있는데 사계절의 변화와 음식의 변화와 특징을 느낄 수 있으며 제주의 생활문화 전반에 걸친 이해를 도와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재현한 해녀 낭푼 밥상.

제주에서 험한 물질을 하는 해녀들 중 80대가 상당수. 매일같이 바다에서 험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은 고령의 나이에 건강함을 유지하는 비밀을 '낭푼 밥상'에서 찾는 이들이 있다. 텃밭에서 갓 따온 푸성귀와 생선류, 젓갈, 잡곡밥으로 구성된 낭푼 밥상은 그야말로 웰빙식단의 표본이다. 그만큼 '낭푼'에는 해녀들의 가족에 대한 사랑과 나눔과 영혼의 숭고함이 함께 들어있었을 것이다. 제주여인들은 식량을 확보하는데 급급하다보니 '요리'를 할 여유가 없었다. 식품을 조리하고 저장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이런 환경이 제주만의 특별한 음식과 식생활 풍습을 만들어 냈다.

물질 나갔던 해녀는 점심을 차리러 잠시 집에 들른다. 이것저것 차릴 시간도 없이 텃밭의 상추 깻잎 배춧잎 고추 따서 된장 한 수저 푹 떠서 옆에 놓았을 것이다. 잘 삭은 자리젓 조금과 물질하며 조금 가져온 갯거리 대충 손질하여 올리고 반찬 두어 개 더한다. 커다란 낭푼에 보리밥 한아름 담아내고 거기에 가족 수대로 수저 꽂아 상을 낸다. 이것이 여름철 낭푼 밥상이다.

여름철에는 대나무로 만들어진 차롱에 보리밥을 담아냈다. 조밥을 지어먹었던 겨울에는 차롱보다는 나무나 놋낭푼을 이용했다. '낭푼 밥상'도 계절별로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낭푼 밥상'의 의미를 음식에 담은 곳

'제주향토요리 명인'으로 선정된 김지순 명인의 이름을 건 음식점 '낭푼 밥상'은 제주음식 하나하나에 담겨있는 의미를 소중히 하는 공간이다. 늘 서둘러야 했던 제주의 여인들의 상차림을 담아내고 있지만 '낭푼 밥상'음식점에서는 조금 여유를 가지는 것이 좋다. 오래전 해녀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없었겠지만 제주의 귀한 음식을 천천히 느리게 음미하면서 먹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식재료와 음식에 대한 존경심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함께 나눠 먹을 밥을 '놋낭푼'에 주는데 이 낭푼은 실제 김지순 명인의 할머니로부터 물려내려온 것이다. 김 명인은 "전쟁통에는 마당을 파서 낭푼을 묻어서 숨겼을 정도로 귀하게 여겼던 것"이라고 전해줬다. 그가 '낭푼'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곳에는 제주인의 삶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낭푼 밥상'에 오르는 제주의 음식을 코스요리로 변화시킨 것이다.

김지순 명인의 대를 잇고 있는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은 "향토음식이 단순 먹거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관광 인프라로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제주도 음식의 특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제주향토음식이 수두룩한 실정"이라며 "제주 전통방식을 살린 제대로 된 향토음식전문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수년에 걸쳐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맛의 방주'를 제대로 선보이기 위해 제주향토음식 김지순 명인이 가진 비법과 각종 제주밥상 소품 등이 전시된 갤러리도 갖춰졌다. 김지순 명인은 해산물을 비롯해 100여종이 넘는 해녀음식을 선보여온 주인공이기도 하다. 제주의 로컬푸드에는 '제주다움'이 빠져선 안되며 제주인의 음식 이야기가 스토리텔링 됐을 때 그 가치는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해녀문화의 생동감을 위해 '해녀음식'기록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취재=이현숙·손정경 기자

"해녀밥상의 가장 큰 특징은 해조류"

제주 맛의 원형 지키는 김지순·양용진 모자
"불턱 아궁이에 가마솥 올려 먹는 모습 잘못"


"해녀밥상의 가장 큰 특징은 해조류에 있어요. 하지만 예전에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해조류가 많죠. 그만큼 바다환경을 살려내는 것이 해녀밥상의 원형을 지키는데 중요합니다."

'해녀밥상'을 떠올리면 가장 생각나는 이들은 물론 제주해녀이다. 하지만 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오래전부터 제주의 음식을 널리 알리기 위해 동분서주했고, 해녀들의 음식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제대로 기록하고 되살리는데 큰 역할을 했던 김지순 제주향토음식 명인이다. 그리고 그의 뒤를 아들 양용진 제주향토음식보전연구원장이 잇고 있다. 제주음식의 원형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명인'의 이름을 건 '낭푼 밥상'에서 모자를 함께 만났다.

전시된 '낭푼 밥상' 앞에 선 김지순 명인과 양용진 원장. 사진=김희동천기자

김지순 명인은 '해녀밥상'이라는 말은 우연한 기회에 하게 됐다고 전했다. 10년전 한 잡지 인터뷰에서 제주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해녀들과 함께 했던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해녀밥상'이라는 말을 하게 된 것. 그 이후 제주해녀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다각적 활동이 펼쳐지면서 '해녀밥상'이라는 말을 이제는 '흔한(?)것' 처럼 인식하게 됐다는 것이다.

김 명인은 최근 해녀음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실제 볼 수 없었던 모습이 억지로 연출하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했다. 김 명인은 "불턱에서는 해녀들이 몸을 녹이고 잘해야 미역귀나 소라를 구워먹었던 것이 전부였는데 최근에는 불턱에서 솥을 올려 밥을 해먹는 모습을 연출하라는 것에 해녀들이 그 장면을 연출한 방송을 볼 때 아쉽다"고 말했다. 오래전 모습을 제대로 알기 어렵게 왜곡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양용진 원장은 "성게는 처음 '먹기 위해 잡은 것'이 아니라 해녀들이 바다를 보호하기 위해 잡아야 했던 것이었지만 지금은 귀한 식재료가 됐다"며 "해녀들의 음식 '깅이죽'은 해녀할망들이 찬바람 불때 끓여먹던 보신 음식"이라고 소개했다. 3월에 잡은 '폭깅이'는 콩과 볶아서 반찬이 되었고 6월에 잡은 게는 돌절구에 갈아서 죽을 쑤기도 했다. 양 원장은 "제주인들은 신선한 재료를 사용해 가장 건강한 밥상을 차려낸 제주 여성들의 지혜가 '낭푼 밥상'에 있다"며 "제주 향토음식 조리법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으며 음식문화의 뿌리를 살려, '뿌리 있는' 제주음식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특히 '해녀밥상'의 핵심은 '해조류'에 있다고 말했다. 점차 사라져가는 '해조류'를 지키기 위해서는 난개발·하수처리 등 바다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해녀들의 음식은 제주의 낭푼 밥상에 기본을 두고 있다"며 "농어업을 함께 해야하는 이들이 해녀였기 때문에 바다밭에서 나오는 음식 뿐 아니라 밭에서 났던 음식들이 함께 들어있어야 진정한 해녀밥상"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숙기자 hs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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