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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세상] 동물이 대접받아야 사람도 존중받는다
하재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18. 05.04. 00:00:00
그가 개와 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아는 커플이 헤어지며 남기고 간 '피피'를 떠맡아야 했다.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매일매일 놀라운 일을 경험한다. 피피와의 동거는 인간 아닌 모든 존재를 동물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버렸던 종전의 생각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쓰다듬기, 바라보기, 핥기 같은 비언어적인 것들로 피피와 인연을 맺으며 개 역시 개별적 존재라는 걸 깨닫는다. 동물 또한 쾌락과 고통을 느끼고 감정을 가진 하나의 개체였다.

하재영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은 이같은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한다. 그가 피피와 만나지 않았다면 쓰여지지 못했을 지 모른다. 버려진 개에 관심을 가지면서 번식장, 개농장, 도살장 등을 취재했고 그것들은 한국 개 산업의 실태를 그려내는 바탕이 되었다.

펫숍 쇼윈도 너머의 인형 같은 강아지들은 대개 강아지 공장으로 불리는 애견 번식장이 출생지다. 제때 치우지 못한 채 쌓여가는 배설물 위에서 일생을 나며 기계처럼 임신과 출산을 반복하는 어미에게서 태어난다. 크기를 줄이기 위해 근친교배를 하는 강아지들은 곳곳으로 팔려나가지만 아프거나 덩치가 커지면 버려지곤 한다. 유기견들이 다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할 확률은 극히 적다. 대부분 안락사된다. 보호소로 가지 못한 개들은 식용견으로 죽음을 맞는다.

이 책에서는 '동물보호'라는 단어보다 '동물권'이 더 많이 등장한다. 동물도 생명권이 있고 고통을 피하고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다. 동물보호가 인간이 주체가 되어 객체를 보살핀다는 시혜의 느낌을 가진 데 비해 동물권은 우리의 인식이나 의지와 상관없는 자연권적인 어감을 지녔다.

어떤 이들은 동물권을 말할 때 "그래도 사람이 먼저 아니냐"는 반응을 보인다. 인권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동물권이 웬말이냐는 식이다. 이에 저자는 칸트를 불러온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목적이다. 더러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이 세상에 수단으로 이용되어도 괜찮은 인간은 없다. 그는 "동물이 대접받는 나라는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며 마하트마 간디의 말을 인용한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성은 그 나라에서 동물이 받는 대우로 가늠할 수 있다." 창비.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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