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진 세화고 교감은 조선시대 제주도 이상기후와 대응 과정에서 파생한 문화로 제주인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고 말했다. 제주는 기후 재해가 빈번했던 섬이다. 기후 재해는 영양실조, 전염병, 사망률 급증으로 이어지는 기근을 불렀다. 조선 500여년 동안에도 크고 작은 기근이 반복되었다. 현종 12년(1670)에 발생해 1672년에 끝이 난 경임대기근, 숙종 39년(1713)부터 43년(1717)까지 5년 동안 연달아 발생한 계정대기근, 정조 때인 1792년부터 1794년까지 계속된 임을대기근이 유독 참혹했다.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해 제주도민을 구제했던 제주의 거상 김만덕이 활약했던 시기가 바로 임을대기근 때다. 건국대 지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오진 세화고 교감은 옛 문헌을 뒤지며 '제주도 3대 기근'의 실상을 정리하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고 했다. 제주사람들이 인간으로서 극복하기 어려운 기후 재앙과 맞닥뜨려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왔는지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가 과거 제주의 기후와 선인들의 대응방식을 살핀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를 냈다. 10여년 전부터 구상했고 지난 7년간 틈날 때마다 집필해 엮은 책으로 사료를 중심으로 이상기후와 싸우며 지역 문화를 일궈온 제주인의 생애가 펼쳐진다. 방풍림 조성, 돌담 축조, 밧볼림(답전), 가로밭갈기 같은 제주 농법은 재해에 대응한 결과다. 방사탑 설치나 영등제(영등굿)와 같은 민간신앙도 재해와 재난을 극복하려는 행위였다. 하지만 그는 조선정부가 보여준 대응책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한다. 제주사람들은 농업과 해상 무역 등을 통해 이상기후에 따른 기근을 뛰어넘으려 처절히 노력했던 데 반해 정부는 식량 부족을 이유로 제주인을 육지로 강제 이주시킨 사민정책, 출륙금지령 등을 실시해 오히려 제주도의 자생적 하부구조를 취약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혹독한 환경에 굴하지 않으면서 이어도를 염원하는 제주 선인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돌담, 해녀문화, 영등굿 등 제주인들의 이상기후 대응 문화는 오늘날 제주인 정체성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푸른길. 2만5000원. 진선희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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