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버거운 날 찾은 애월 바다에서 위안을 받듯 조선희 시인은 편안하면서도 여운을 주는 시를 계속 쓰고 싶다고 했다. 삶에 치인 날 돌아보니 문학이 홀로 사는 노인들 모습에 눈길 아버지 이야기 이번에도 계속 그가 시를 만난 건 어느날 동맥류 진단을 받았던 무렵이다. 갑작스레 몸에 이상이 찾아들자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된다. 무던히도 일상에 치이며 살았구나 싶었다.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선생님 몰래 소설책을 펴놓고 읽는 등 한때 '문학 소녀'이던 기억이 그를 잡아끌었다. 얼마 후 친구의 소개를 받아 구좌문학회에 가입한다. 그의 시에는 황혼녘 사람들이 자주 얼굴을 비친다. 1년째 제주시자원봉사센터의 독거노인 생활관리사로 일하고 있는 시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오래 사는 집', '뒤란으로 가는 잠', '깊숙한 당부' 등에 그런 풍경이 자리잡고 있다. '긴 골목, 아흔셋 할머니/ 굽이도는 돌담 따라 눈길을 주고 있다/ 지나온 날이/ 흑백 사진처럼 느리게 지나고 있는지/ 무리 지어 핀 백합도 잊은 채/ 자식들 얼굴 보기 힘들다고/ 오랜 만에 사람 꼴 본다고 푸념하듯 말을 건넨다'('오래 사는 집' 중에서) 시인은 초점 없는 눈을 한,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건 아닐까. 그는 첫 시집 '수국꽃 편지'에서 4·3으로 고아가 된 아버지 이야길 참으로 많이 꺼내보였다. 시인의 자매들은 그에게 이젠 그만할 때가 되었다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아버지를 제대로 모시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 때문인지 그러질 못했다. 이번 시집에도 몇 차례 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구멍 숭숭 뚫린 뼈다귀를 추려내면서/ 아버지, 소뼈 같은 손바닥 사이/ 오십 줄 철없는 딸/ 오랜만에 나무의자에 앉아 우려낸 곰국 들이키며/ 훌쩍훌쩍'('곰국' 중에서) '나의 시(詩)'에 나오는 한 구절처럼 조 시인은 마음을 숨겨놓거나 행간에 보물을 심어두는 시는 못쓰겠다고 말한다. 대신 '언제나 당신을 적셔줄 촉촉한 빗소리' 같은 시 한편에 대한 갈망이 있다. 편안하게 읽히면서도 공감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애월같은 시를 꿈꾼다. 사는 게 버거운 날, 산다는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시외버스를 타고 다다른 애월 바다가 두 발 물담근 그에게 포기하지 말고 힘내라는 간곡한 말('애월에 서다')을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황금알. 9000원. 진선희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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