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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플러스] 제2공항 예정지 성산지역 옛 사람들의 삶과 도구
난산·온평리 등 6개 마을 생활상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입력 : 2019. 02.07. 20:00:00
“몇백년 가도 썩지 않는 부엌문”
혼수품 사오기궤·3대째 사용 낙인
민속문화의 보고 제주 원형 보존

생물권보전지역 지정(2002)으로 시작해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에 이어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까지 세계 최초의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 3관왕이라는 제주는 지구의 축소판이다. 이러한 자연에 의지해서일까, 제주사람들은 자연환경만큼이나 독특한 민속문화를 만들어냈다. 같은 사물을 일컫는 언어가 산남과 산북이 다르고, 동일한 유물의 형태와 사용방법이 해안과 중산간이 또 다르다. 학자들은 제주를 민속문화의 보고라고도 부른다.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은 '제주인의 삶과 도구총서'를 통해 제주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던 생활도구와 농사일·바닷일 등에 사용했던 도구를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 펴낸 총서 '성산읍 편'의 조사 대상에는 제2공항 예정지인 마을들이 포함돼 자취를 감출 수도 있는 도구와 기물 등을 활자와 사진으로 담았다. 성산읍 난산리, 수산1리, 수산2리, 신산리, 신천리, 온평리 6개 마을에서 마을 출신이거나 인근 지역에서 시집와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이 생생하게 소개하는 의생활, 식생활, 주생활, 농업, 어업, 축산 분야의 도구를 엿볼 수 있다.

# 의생활

성산 지역에는 발틀(발재봉틀)과 손틀(손재봉틀)을 아직까지 보관하고 있는 가구가 많다. 발틀을 사용할 때 앉았던 '미승(재봉틀의 일본어 '미싱' 또는 '미승')의자'가 이번 조사에서 새롭게 등장했으며, 바농상지(반짇고리)와 쌈지, 바농절레(바늘겨레)의 형태도 다양했다. 온평리 사는 현모씨(81)는 시할머니가 시어머니에게 물려주고 시어머니가 자신에게 물려준 청자로 만든 바농상지에 바농절레와 실패 등을 담아 지금도 쓰고 있다. 다듬이질할 때 밑에 받쳤던 안반(돔베)은 세월의 더깨를 고스란히 안고 있으며, 빨랫감을 두드리던 물마께(빨렛마껭이 또는 서답마께)는 집집마다 모양과 크기가 달라 주인의 개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맷돌을 이용한 빨랫돌을 수돗간에 설치한 집이 남아 있고, 수산리에 사는 김모씨(83)는 오일장에서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마저 아득한 빨래판을 이용해 빨래를 한다.

# 식생활

제주도 어느 지역이랄 것 없이 성산읍도 물이 귀한 곳이어서 집집마다 동백나무에 띠(새)를 꼬아 매어 밑에 항아리를 두고 빗물을 흐르게 해 받아쓴 '참항'을 두고 있었다. 난산리 김모씨(77) 집과 수산1리 고모씨(80) 집 안튀(뒤뜰)에 빽빽히 심어놓은 동백나무가 그 흔적이다. 물을 길어 나르는 물허벅, 술을 담는 술허벅, 죽을 담은 죽허벅, 씨를 담는 씨허벅 등 쓰임새에 따라 아가리의 모양이 조금씩 다른 허벅도 안튀를 장식한다. 난산리 김모씨(90)는 결혼해 살림을 차린 뒤 구입한 사기사발 열 벌을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수산1리 김모씨(83)가 긴 머리를 잘라서 판 돈으로 구입한 낭푼(양푼)은 60년이 됐지만 고운 자태를 유지해 '식구'의 뜻을 제대로 알려준다. 얼마나 오래 사용했는지 손잡이가 짧아지고 얇아진 놋숟가락과 요즘은 윷놀이 도구로도 활용되는 종지, 둥글어서 도리상으로 불리는 밥상도 부엌을 장식하고 있다.

# 주생활

성산 지역에서는 부엌을 공싯간이라고 불렀다. 안거리(안채)에 붙어 있는 곁채 한 쪽을 활용해 공싯간을 만들어 사용하는 집이 수산리와 난산리 등지에 남아 있다. 벽체 밑에 구멍을 뚫어서 재를 내보내는 잿고망(잿구멍) 윗벽에는 연기에 그을린 모습이 선명하다. 요즘 주택은 물론 카페의 고급 인테리어 자재로 인기몰이 중인 대문과 방문, 뒷문, 부엌문, 창문도 오래된 집을 지키고 있다. 가시나무로 만든 부엌문을 간직한 한 주민은 "몇백년이 가도 썩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수산1리에는 정주석을 세워놓고 있는 집도 많다. 담벼락에 붙어서 벽체 역할을 하는 것도 있지만 정낭을 걸쳐놓아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는 정주석도 흔하다. 여성들이 혼수품이었던 벚나무로 만든 사오기궤, 느티나무로 만든 굴무기궤, 멀구슬나무로 만든 망쿠실낭궤 등 다양한 재질의 궤는 안방 시렁(벽장) 위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제 구실을 못하는 정동화리(청동화로)·돌화리(돌화로)·부섭·굴묵(아궁이) 등의 난방도구를 가진 집도 있고, 돌도고리는 화단 장식용품으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 농업·어업·축산

성산읍 지역에서는 다른 지역(구좌·안덕·한경) 조사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말접게(말의 목대)'가 등장했다. 신산리 고모씨(77)는 사흘 정도를 가르쳐야 밭을 갈 수 있는 소와 달리 바로 밭을 갈 수 있는 말을 더 선호했다고 한다. 신산리 한 농가는 밭갈이할 때 이용한 보섭(보습)과 보섭 위에 덧대는 쇳조각인 벳(볏)을 보관하고 있으며, 무밭을 중경(사이갈이)할 때 쓰는 중경기와 서서 땅을 파거나 김을 매는 도구인 선호미도 이곳에서 새로 확인된 도구 관련 어휘다. 반농반어 지역인 성산에는 빗창(전복을 따는 창)과 소살(작살), 갈각지(호미) 같은 해녀들의 채취 도구도 풍부하다. 원이 지배하던 시기 말 목장을 처음으로 개설한 곳이 수산리여서인지 성산 지역에는 축산 관련 옛 도구도 다양하다. 수산리 오모씨(81)는 할아버지 때부터 쓰던 넥인(낙인)을 3대째 사용하고 있다.

민속자연사박물관은 2013년(애월), 2014년(조천), 2015년(구좌), 2016년(안덕), 2017년(한경), 2018년(성산)에 이어 2019년(대정), 2020년(남원), 2021년(표선), 2022년(한림)까지 도내 전지역 전수조사 10개년 계획을 세워 제주인의 삶과 도구총서를 펴내고 있다. 박물관은 장롱 깊숙이 또는 마당 한구석에 방치된 유물이 박물관에서 빛을 볼 수 있게 도민들의 제보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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