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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찬미의 한라칼럼] 다시 꿈꾸는 조국(祖國)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19. 09.24. 00:00:00
최근 가족여행을 패키지로 떠났는데 다른 일행의 급작스런 여행 취소와 결항 등 연이은 악재로 우리가족만 달랑 현지에 도착해 낭패를 보게 됐다. 이 상황을 수습하며 전담 가이드가 되어 준 현지 여행사 직원 덕분에 꼬여버린 여정은 최고의 여행으로 뒤바뀌었다. 단순히 고객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여행사 응대 차원이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가이드가 꿈이었다는 청년의 열정과 진심을 보게 되니 또 다른 가족을 만난 듯 여행 내내 편하고 흐뭇했다. 그런데 타지에서 최저임금보다도 적은 월급에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꿈이 있기에 힘들지 않다며 희망찬 눈빛으로 말하는 이 청년에게, 멀리서라도 응원을 보내야 할 그의 조국이 도리어 희망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 부끄러웠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조국사태를 둘러싼 논쟁은 가라앉지 않고 더 격화돼 있었다. 여야의 정쟁과 편 가르기 논쟁 대부분이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부정하는데만 총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인다. 그간의 정치사와 진영논리 등이 펼쳐지는 이 화려한 설전이 목표하는 전리품은 사건의 실체인 것 같지 않다. 각자 개혁을 부르짖지만 그 속내는 기존 지위나 세를 더 공고히 하려는 데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상대를 모독하는 발언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까지 노출하며 논쟁 밖 사람들에게도 상처를 남기고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싸움에서 각자만의 '조국'을 구하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밝히지만, 사실 그 어디에도 유익하지 못하며 불만과 불신이 팽배한 사회 분위기만 조성할 뿐이다. 서로를 물어뜯다보니 그 과정에서 정작 드러나는 것은 흠 많던 본인의 민낯인데도, 부정이 부정을 낳는 이 싸움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누구도 애초부터 이런 싸움에 인생을 소모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대한 포부를 가지고 현재 자리에까지 이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푸른 꿈이 이제는 본인이 바꾸려 했던 세상과 쉽게 타협하며 지낼 정도로 많이 퇴색되고 변질된 것을 혼자만 깨닫지 못한 게 아닐까. 꽤 오래 전에 본 영화 '도가니'의 대사, "우리가 싸우는 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요새 자꾸만 다시 떠오른다.

거창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오히려 본래 꿈에서 멀어지고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면 결국 혼탁한 세상 속으로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이다. 꿈이 크든 작든 매일 매일 그 초심을 정직하게 대면하며 자신을 먼저 단속해나가야만 한다. 그 다음에야 비로소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꿀 힘을 갖추게 될 것이다. 이제 기성세대는 잃어버린 꿈을 되찾고, 청년들은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자산으로 만든 모래성 스펙 대신 자신만의 온전한 꿈에 기대 일어서기를 바란다. 이 땅의 젊은이들과 더불어 타지에서 건실히 일하는 청년 모두가 꿈꾸며 성장해나갈 동력을 든든히 제공해 줄 수 있는 조국(祖國)으로서 이 대한민국이 꿈과 희망이 실현되는 정의·공정 사회로 거듭나기를 희망한다. <고찬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전문위원·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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