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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격 현장 보존·전시관 조성 만주 주둔 관동군 제주 배치 지린성(길림성)·랴오닝성(요녕성)·헤이룽장성(흑룡강성) 등 동북3성은 한반도와 시대를 달리하며 밀접하게 얽혀있다. 하얼빈을 성도로 한 헤이룽장성 일대 역시 고대 고구려와 발해의 강역이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이곳 만주 일대에 주둔했던 관동군이 제주로 이동, 일본 본토사수를 위한 결7호작전에 대비했다. ![]()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이 보존된 하얼빈 역사 내부. 아래 둥근원 화살표 표시가 저격지점이고, 위 둥근원이 피격지점이다. 강희만기자 안중근 의사 의거 현장은 중국 정부에 의해 보존·관리되고 있다. 하얼빈 역사 정문 건물 왼편. 벽면에는 한문으로 '안중근의사기념관'이라는 가로 현판이 내걸려 있다. 기념관은 입구로 진입하면 안 의사 조형물이 전면에 배치됐다. 내부는 안 의사의 출생과 성장에서부터 거사 과정과 각종 사진·문헌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 안중근 의사 기념관 입구. 강희만기자 "죽음이 두렵지 않다. 고문도 두렵지 않다. 나의 이성과 심장은 조국에서 일본인들에 의해 병들었다. 죽으면서 나는 기쁘다. 나는 조국 해방의 첫 번째 선구자가 될 것이다." ![]() 안중근 의사 기념관 내부. 강희만기자 "내가 죽은 뒤 하얼빈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다오." 안 의사는 고국에 안장되기를 원했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유해조차 찾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안 의사가 잠시 묻혔다 고국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하얼빈공원은 지금의 조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조린공원은 안 의사가 하얼빈 도착 하루 뒤인 1909년 10월 23일 이곳에서 거사계획을 논의했던 장소다. ![]() 쑹화강을 가로지르는 중동철도. 지금은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강희만기자 하얼빈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중앙대가(일명 러시아거리)와 성소피아성당 주변은 유럽풍의 건물이 즐비하다. 100년이 넘는 유럽풍 건물들은 하얼빈의 빛과 그림자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중앙대가에는 안 의사가 거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사진 찍었던 곳으로 알려진 '마리아호텔' 건물도 남아있다. 안 의사는 호텔 안 이발소에서 사진을 찍고, 일본 사람 복장으로 변장했다고 한다. ![]() 안중근 의사가 거사 계획을 논의했던 조린공원. 강희만기자 ![]() 1907년 건립된 성소피아 성당. 강희만기자 ![]() 하얼빈의 대표적 관광명소인 중앙대가. 강희만기자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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