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가 만년에 쓴 현판인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19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인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서예사 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에서 업적을 남겼다. 추사는 55세가 되던 해인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했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추사체(秋史體)를 낳았고 국보로 지정된 '세한도(歲寒圖)'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같은 추사의 삶과 학문, 예술 세계를 기리기 위해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 추사유물전시관이 있던 자리에 2010년 5월 새롭게 문을 연 제주추사관이 개관 10주년 기념 특별전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오랜 휴관을 끝내고 6월 4일 재개관과 동시에 시작되는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한국전'이다. '파공진상(坡公眞像)'. '문자반야(文字般若)' . 제주 전시에는 지난해 6월 중국 베이징 국가미술관에서 개최된 '추사 김정희와 청조문인의 대화' 출품작 중에서 추사의 일생에 걸친 대표작품을 골라 약 40점을 선보인다. 한중교유 역사에서 최절정기로 통하는 19세기를 추사와 청조문인의 학예대화(學藝對話)로 조명하는 전시로 제주 유배시절 완성된 '세한도' 영인본, 대련 작품인 '인고·폐거(人苦·弊去)', 소동파상 '파공진상(坡公眞像)', 만년에 쓴 현판인 '단연죽로시옥(端硏竹爐詩屋)', '문자반야(文字般若)' 등이 나온다. 추사는 24세에 연행(燕行)을 계기로 청조 학예계 거장인 78세 옹방강과 47세 완원을 만난 뒤 두 사람을 평생 스승으로 모셨고 북학의 핵심인 청대의 경학과 금석고증학을 조선에 도입해 역사와 서법 두 방면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며 '학예일치(學藝一致)'를 구축해갔다. 정통 유학자인 추사는 또한 유교는 물론 불교와 도교를 아우르며 학문과 사상을 서예술 하나에 모두 녹여냈다. 특히 제주 유배시기의 처절한 실존을 소동파를 사숙해 학예로 극복하면서 '해동통유(海東通儒)'의 면모를 완성시켰다. 해배(解配) 이후엔 '괴(怪)'의 미학을 골자로 하는 추사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예술이 극진한 경지에 이른 '유희삼매(遊戱三昧)'의 세계를 펼쳐놓는다. 김정희 제발(題跋), 허련 그림 '산수국'.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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