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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동자석인 김만일 묘 동자석. 김유정 소장이 촬영한 사진으로 재차 도굴되면서 현재는 행방을 알 길이 없다. 어느덧 30년이다. 그가 동자석의 가치를 드러내고 여론화시켰던 시간이다. 2001년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아름다운 제주석상 동자석' 전시를 열었고 2003년엔 동명의 단행본을 묶었다. 당시 그는 이미 10년 전부터 동자석을 필름 카메라에 담아왔고 그 일부를 세상 밖으로 꺼낸 거였다. 2012년에는 '제주도 동자석 연구' 논문으로 예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미술평론가인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이다. 그가 이번엔 '화산섬 무덤의 꼬마석상'이란 부제를 단 '제주도 동자석 연구'(제주문화연구소 펴냄)를 냈다. 전작을 대폭 보완한 것이자 동자석 연구의 중간보고서 성격을 띠는 책자로 기물(지물), 문석인(문인석), 아아용암(용암석) 등 용어를 다듬고 지난 발표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았다. 그의 동자석 연구는 다음과 같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왜 죽은 자의 무덤에 천진한 아이의 모습을 세웠을까. 형태론적으로 볼 때 육지 동자석은 다 자란 아이지만, 제주 동자석은 그대로 어린아이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는 제주도 동자석이 죽은 조상을 위해 정성을 가지고 효도하고자 한 섬 사람들의 의례용 조각이면서 유교 사상과 대립하는 무속, 도교, 불교 사상이 습합된 기념물 조각이라고 했다. 노장사상에서 동자는 신선을 보필하는 심부름꾼이다. 불교에서는 보살의 보필자라는 상징이 있다. 유교에서는 선비의 잔심부름을 하는 도우미다. 무속에서는 악귀를 쫓는 역할을 한다. 제주 사람들이 현실적 어려움에도 조상숭배에 몰두한 배경엔 어려운 섬의 경제적 여건이 작용했다고 본다. 생계에 위협을 받다보니 그런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새로운 유토피아를 반영한 민중 염원의 모습이 동자석으로 구현됐다. 이같은 동자석에는 자연미, 단순미, 소박미, 파격미, 해학미가 있다. 특히 파격미와 해학미에는 외세의 억압과 착취에 저항하며 자주적인 세상을 꿈꿔온 제주인의 현실 극복의 미학적 의지가 담겼다고 했다. ![]() 김유정 제주문화연구소장. 오늘날 우리의 들녘엔 동자석의 씨가 말랐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한 저자는 그래서 더더욱 남은 작업을 마쳐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슬라이드 필름으로 찍은 수 천장의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는 그는 "동자석의 개별 연대를 밝히고 알타이 석상과의 비교 등은 보다 세밀한 준비를 위해 다음번으로 미루겠다"고 했다.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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