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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제주 사회 '선택적 기억' 넘어 상호 존중을"
천주교 제주교구 5월 28일 중앙성당서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당시 희생 평민·교민 모두 제주 공동체 구성원 인식 제주 미래 발전 모색"
제주교구 "제주 사회와 연대 화합·일치 향한 '제주다움의 회복 운동' 전개"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1. 05.28. 23:38:25

28일 오후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 마지막 순서로 종합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진선희기자

1901년 신축년 사건에서 죽은 평민이나 교민 모두 제주에서 살아갔던 공동체 구성원이기에 상호 존중 아래 제주 공동체의 미래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천주교 제주교구 측에선 '신축교안(辛丑敎案)'을 교훈 삼아 '제주다움의 회복 운동'을 전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8일 오후 2시부터 3시간여 동안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신축교안, 기억과 화합' 주제 심포지엄을 통해서다.

천주교 제주교구가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공동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은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신축교안의 오늘날 의미를 찾고 기념사업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 자리에는 심포지엄을 주관한 제주교구장 문창우 주교와 한국교회사연구소장인 조한건 신부, 직전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 상임공동대표인 송재호 국회의원과 김수열 시인, 양조훈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특히 최근 발굴된 자료에서 1920년 한국 교회의 첫 로마 신학생 2명 중 1명으로 확인된 제주 출신 전을생(전아오, 1894~1922)의 유가족들도 함께했다. 로마에서 갑작스런 죽음을 맞으며 끝내 사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전아오는 신축교안 때 부친 등 가족을 잃었다.

심포지엄의 문을 연 문창우 제주교구장은 기조 강연 형식의 개회사에서 신축교안을 일명 '이재수의 난'으로 칭하며 '신축교안의 오늘의 의미'를 두고 "복음화(선교)는 타인의 인정과 대화가 근본임에도 신축교안 당시 교회는 그러지 못했다"면서 "교회와 제주도가 어떻게 만나고, 대화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제 발표 순서에서는 양인성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이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형성과 변화'를 다뤘다. 이 발표에서는 1901년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의 신축교안 인식, 천주교회의 신축교안 인식 변화, 신축교안 인식을 둘러싼 충돌과 대화란 소제목 아래 천주교회와 제주 사회가 해당 사건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각종 자료를 살피며 촘촘하게 짚었다.

양 연구원은 신축교안, 제주교난, 제주교란, 제주민란, 이재수의 난 등 다양한 명칭만큼 복합적 성격을 지닌 이 사건에 대해 오랜 기간 천주교회, 제주 사회 양측 모두 "선택적 기억"을 드러냈다고 봤다. 천주교회는 교안의 실상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선교사들의 편향된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고, 천주교 박해로 신자들이 희생되었다는 도식적 설명만 되풀이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천주교회의 기억에는 '순교'만 있었다. 제주 사회도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재수를 비롯한 민군을 영웅시했고 수많은 인명 살상에 대해 별다른 반성의 뜻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피살당한 천주교 신자도 같은 제주도민이었다는 점은 잊힌 채 '의거', '항쟁'으로만 기념했다고 덧붙였다.

28일 오후 천주교 제주교구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열린 '신축교안' 12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문창우 교구장이 기조강연 형식의 개회사를 하고 있다. 진선희기자

그들의 '대화'는 한참 뒤에 이뤄졌다. 1997년 제주교구는 '제주 선교 100주년 기념 사업'을 계기로 신축교안 인식을 재검토했고, 2003년에는 '1901년 제주항쟁 100주년 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화해와 기념을 위한 미래 선언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양 연구원은 "미래선언은 충분히 평가받을 가치가 있다"면서도 그 이후 천주교회나 제주 사회의 신축교안 인식이 이전보다 크게 바뀌지 않고 있는 점을 한계로 지적했다. 양 연구원은 2021년 신축교안 120주년을 맞아 기념 행사를 펼치는 천주교회와 제주 사회가 다시금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된 만큼 지속적인 만남을 기대해본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요안 제주교구 사무처장은 '2003년 미래 선언의 의미와 향후 기념사업의 방향'을 주제로 발표했다. 현요안 신부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회칙 '모든 형제들'을 중심에 두고 신축교안을 통해 배우고 변화된 제주 천주교회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를 차례로 밝혔다.

현 신부가 이날 내놓은 기념사업의 방향은 우선 황사평 성역화 사업이다. 4·3평화공원과 하귀 영모원 등을 벤치마킹해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분을 뛰어넘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내용으로 화해의 탑 설치를 시작으로 화해의 성당 건립, 역사 추모공원 조성을 구상하고 있다. 제주교구는 이와 관련 지난 3월 말 황사평 성지 계획으로 '장묘문화 소위원회'룰 구성했고 '황사평 신축교안 프로젝트'도 기획 중이라고 했다. 신축교안의 교훈을 잊지 않고 평화의 연대를 꾀하는 신성학원, 강정평화센터를 활용한 평화교육 활성화 계획도 내놓았다.

'신축항쟁 120주년 기념사업회'와 연대해 용서와 화해, 화합과 일치를 향한 '제주다움의 회복 운동'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했다. 제주 사회와 연대하는 방안으로 구체적 사료에 바탕을 둔 신축교안 주제 문화예술 행사, 관덕정·삼의사비·대정향교 등 역사적 현장에 대한 보전과 순례 등도 함께 제시했다.

토론자로 나선 박찬식 전 제주학연구센터장은 "같은 제주도민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외부세력과 외래문화의 유입에 따라 교민과 평민으로 나누어져 갈등을 빚었던 신축년 사건의 해법을 세계 냉전과 분단에 따른 동족상잔의 과거사를 해결해 나간 베트남 전쟁과 4·3의 사례에서 찾아봤으면 한다"면서 "민란의 세 장두(이재수 오대현 강우백)가 "제주도민을 대신해서 죽어간" 영웅과 의사로 후세대에 의해서 거듭나듯이, 관덕정에서 죽어간 다수의 교민들 또한 '거룩한 순교와 희생'으로 후대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상호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신축년 사건의 주요 사적지인 관덕정은 민군 입성과 교민 척살이, 황사평은 민군 주둔지와 교민 매장지의 역사성이 중첩된 처소"라면서 올해 '화해의 탑'에 이어 향후 관덕정 기념물을 조성할 때에도 2003년 미래선언의 취지대로 상호 존중과 제주 공동체의 미래 발전을 위한 결과물이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좌장을 맡은 주진오 상명대 교수는 심포지엄을 마무리하면서 1997년 천주교 제주교구가 공식 채택한 '신축교안'이란 용어가 이 사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어렵게 만든다며 이것부터 재고해보자고 했다. 주 교수는 또한 "당시 세폐나 교폐의 책임자는 따로 있는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제주 민중들에게 돌아갔다. 왜 제주 사람들끼리 서로를 죽였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면서 "신축교안의 쓰라진 경험이 반성과 회개를 이끌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커다란 밀알이 되리라 본다"고 말했다.

천주교 제주교구는 심포지엄에 이어 29일 오후 2시에는 황사평에서 '화해의 탑' 제막식을 개최한다. 제막식이 끝난 뒤에는 황사평-화북성당-별도봉-관덕정-중앙성당까지 '신축 화해의 길 걷기'가 예정됐다. 오후 7시30분에는 중앙주교좌성당에서 위령 미사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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