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연애의 온도'. 요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헤어진 연인들이 자신의 연애 이력을 숨긴 채 다른 커플들과 함께 한 집에서 지내는 '환승연애'와 이혼한 남녀가 데이트 기간을 거친 후 동거를 선택해 함께 사는 시간을 가져보는 '돌싱글즈'가 그것이다. '사랑의 스튜디오'부터 '짝-애정촌', '우리 결혼했어요' 그리고 몇 년 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트 시그널'시리즈까지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동안 남의 연애의 이력을 사랑해왔다. 거의 쉬어가는 해 없이 모든 방송사에서 연애 프로그램을 제작, 방영해왔으니 지겨울 법도 한데 이상하게 남의 연애를 보는 일은 늘 새롭고 짜릿하다. 특히 비대면 시대를 맞이한 지금 시대에는 방송이긴 하지만 마스크를 벗은 채로 서로 얼굴을 맞대고 웃음과 눈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 몰입이 쉽고 빠른 것 같기도 하다. 기존의 연애 리얼리티들에 비해 '환승연애'와 '돌싱글즈' 두 프로그램이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지점은 이들의 메인 테마가 '이별'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상처일 수도 있고 과거의 흔적 이기도 한 이별이라는 이름의 헤어짐 위에서 다시 시작되는 관계를 지켜보는 일은 여느 데이트 프로그램을 보며 느끼는 설렘과는 또 다른 정서를 전해준다. 애틋하고 안타까운 감정의 폭우가 느닷없이 쏟아지는 이 프로그램들 때문에 '대체 내가 밥 먹다가 남의 연애 보면서 왜 이렇게까지 우는 걸까'하고 난감해하고 있다. 프로그램 속 잊지 못하는 것과 잊지 않는 것을 간직한 채 연애 초년생을 지나버린 사랑 후의 연인들은 자주 주저하고 문득 후회하며 새로운 설렘을 걱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끌림으로 또다시 쉽지 않을 항해를 시작한다. 어쩌면 연애라는 것은 외국어를 배우는 일과도 비슷할 것이다. 나는 낯선 상대의 언어를 배우고 상대는 나의 모국어를 연습한다. 하지만 이 외국어 학습에는 왕도도 선생님도 없다. 둘이 하는 말은 지구 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말이다. 오직 둘만이 이해할 수 있어서 둘만이 소통할 수 있는. 그래서일까 '말이 안 통해서 헤어졌다'는 수많은 이별의 이유들을 떠올려보면 연애에는 독심력보다 문해력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돌싱글즈'의 한 출연자는 전 배우자의 폭언으로 인해 이혼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합당한 이유다 '야 다르고 얘 다르다'. 도대체 어디서 배워 먹은 건지 학력과는 무관하게 못 배운 연애의 말들을 구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도 멋있지 않다. 말만 예쁘게 해도 몇 년은 더 만났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커플들을 주변에서도 꽤 많이 봐왔다. 처음에 눈으로 반한다면 그 후의 관계에서는 많은 것들이 열리고 닫히는 입에 달려있다. 구강 액션이라는 신조어로 홍보하던 영화가 있었는데 구강 액션이라면 바로 이 영화가 떠오른다. 연애의 감칠맛에 전투의 마라향이 더해진 한겨울에 먹는 아주 매운 케이크와 최고로 쓴 커피 같은 영화, 노덕 감독의 '연애의 온도'다. 하긴 어떻게 사랑이 달콤할 수만 있을까. 우리 모두 그 달콤한 뒤에 남은 텁텁함을 모르지 않는다. 제대로 닦아내지 않은 달콤함의 흔적들은 결국 사랑의 치석이 되고야 만다. 입 안을 맴도는 쓰리고 아린 연애의 이물질들. 차마 뱉어내지 못하는 미련과 아쉬움들. 그래도 이렇게 세심하고 예리하게 연애의 단면을 묘사한 작품들을 만날 때는 나도 모르게 그 비정한 세계에 다시 또 발을 들이게 된다. 남의 연애라는 간접 체험을 이토록 사랑하는 나를 보면서, 유명한 인기 가요의 제목을 바꾸어 보았다. "어떡하지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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