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영화觀] 사랑의 응답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1. 11.26. 00:00:00

영화 ‘너에게 가는 길’.

지난 11월 17일 개봉한 변규리 감독의 <너에게 가는 길>은 커밍아웃한 성소수자 자녀들을 둔 어머니들인 비비안과 나비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와 같은 영화에 대한 짧은 설명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먹먹해지는 무거움이 느껴진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지만 여전히 넘실대는 혐오와 집요한 차별이 뒤엉켜 거대한 바리케이트로 세워진 세상의 곳곳에서 이들의 행로가 순탄하리라 낙관할 수 없기 때문이겠다. 비단 세상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가장 가까운 관계라 할 수 있을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비밀이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또한 그 용기에 응답할 수 있으려면 사랑이라는 위대한 힘을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그 힘을 낙관하며 걸어나간다. 세상의 벽들을 뚫고 나갈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어두운 마음의 자리마저 눈부시게 비추는 두 어머니의 행보는 개척자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제목처럼 '너에게 가는 길'을 내고 그 위를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이들의 퍼레이드는 우려를 가뿐히 뛰어 넘는 경쾌한 스텝이 된다. 혐오의 위로, 차별의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웃으면서 울었고 울면서도 웃었다.



필리포 메네케티 감독의 프랑스 영화 <우리, 둘>은 커밍아옷을 망설이는 어머니와 그의 동성 연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극영화다. 같은 층의 아파트에서 서로 마주보는 이웃으로 살고 있는 두 연인 마도와 니나는 20년째 비밀스런 사랑을 지켜오고 있다. 마도는 니나와 함께 남은 여생을 온전히 사랑하는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 자식들에게 오래 망설여온 커밍아웃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마음 먹은 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 마도는 커밍아웃에 실패하고 갑작스러운 뇌졸증으로 쓰러져 자식들이 고용한 간병인과 24시간을 보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자식들 모르게 지척의 연애를 이어오던 마도와 니나 두 사람의 일상은 완벽하게 뒤바뀐다. 사랑하는 사람을 돌볼 수 없게 된 니나는 마도의 곁으로 갈 수 없어 애가 타고 차마 하지 못한 말을 가슴에 묻은 마도는 몸과 마음의 이중고에 시달린다. 그토록 오랫동안 견고하게 지켜온 두 사람의 사랑은 이렇듯 결정적 순간에서 암초를 만나게 되고 영화는 길지 않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커브와 충돌을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영화 <우리, 둘>은 한치 앞도 짐작하기 어려운 스릴러 장르의 분위기로 긴박하게 진행된다.



<너에게 가는 길>이 자식의 커밍아웃을 받아 들인 어머니들의 이야기라면 <우리, 둘>은 자식에게 커밍아웃을 하지 못한 어머니의 이야기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어둠 속에서 빛을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라는 결말은 비슷하다. 하지만 <너에게 가는 길>은 이 사랑을 광장으로 꺼내어 놓는 영화고 <우리, 둘>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사랑을 안타깝게 지켜내는 영화라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 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목소리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드러낸 존재 자체를 그대로 보아주는 시선이다. <너에게 가는 길>에서 나비와 비비안의 눈빛은 그 자체로 등불이 된다. 세차게 흔들어대는 바람에서도 꺼지지 않는 그 등불은 상대를 응시한 뒤 세상으로 시야를 넓힌다. 반면 <우리, 둘>에서 커밍아웃을 망설이는 마도의 눈빛과 어머니의 비밀을 알아차린 딸의 눈빛은 안타깝게도 마주치지 못한다. 서로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선은 결국 타인의 마음 안으로 들어갈 수 없던 것이다. 말할 준비와 들어줄 준비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웠을 침묵을 깨고 나온 외침을 메아리로 들려줄 태산으로 굳어질 것인지 아니면 대화의 상대로 삶의 자리를 지킬 것인지가 아마도 앞으로의 세상을 결정할 가장 중요한 선택이 아닐까. 두 영화를 보며 사랑을 응답하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더 많은 미래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어떤 사랑도 평범하지 않고 모든 사람은 각자의 서로에게 누구보다 특별하다. 역지사지면 백문백답이리라 믿는다.

<진명현 독립영화 스튜디오 무브먼트 대표>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