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 내한성인 팽나무버섯은 겨울버섯의 대명사 인식
기온 낮아 빨리 성장하지 않고 노화도 늦어 싱싱한 모습
곶자왈 특이환경에 따라 국내 미기록종 더 많이 관찰돼




겨울이다. 잎을 떨어뜨린 나무도 휴식에 들어가고, 꽃을 찾던 나비도 동면에 들어갔다. 거의 모든 생명의 움직임은 정지 상태가 되고, 먹이를 찾는 산새들만이 간간이 파드닥거리는 한겨울, 흰 눈이 산야를 덮고 찬바람만 스산한 이 추운 시기에도 들에서 버섯을 만날 수 있을까?



▶식용버섯도 만날 수 있다=물론 겨울에도 버섯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늘 흔히 먹는 팽이버섯의 야생형인 팽나무버섯은 대표적인 내한성버섯이다. 비가 내리고 습기만 풍부하다면 늦은 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활엽수의 죽은 가지에 늘 발생한다. 팽나무버섯은 그래서 겨울 버섯의 대명사처럼 인식된다.

인공적으로 갈색색소를 없애버린 흰 팽이버섯보다 더 고소하고 맛갈스러운 팽나무버섯은 특히 낙엽활엽수가 우점하는 한라산과 교래곶자왈, 화순곶자왈 등 제주의 전역에서 관찰된다. 특히 추운 시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버섯파리 유충들의 선점 없이 깨끗한 상태로 채취가 가능하다.

추운 시기에 발생하는 버섯들은 기온이 낮기 때문에 빨리 성장하지 않고 더불어 빨리 노화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래 싱싱한 모습을 간직한다.

털목이나 목이와 같은 식용버섯은 봄에서 여름에 주로 발생한다. 간혹 며칠 습하고 따뜻한 햇살이 내리비치면 계절을 잊고 세상 밖에 나왔다가 흰 눈을 뒤집어쓰게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만져보면 부서질 듯 딱딱하게 말라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집에서 따뜻한 물에 불리면 금세 부드러워지면서 식용이 가능해진다.



▶나무가 집이 돼 주기도 한다=바깥세상은 눈에 덮이고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이라지만 커다란 고사목의 내부는 냉기로부터 버섯 균사체를 보호해줘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무는 균사체가 얼어붙지 않고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지켜주게 된다. 균사체가 살아 있어야 내년에도 버섯을 키워낼 수가 있고, 분해 활동을 왕성히 할 수 있고, 야생동물의 먹이가 돼 배가 고프지 않게 해줄 수도 있다.

커다란 고사목에 주로 발생하는 참부채버섯도 늦가을부터 이른 봄까지 발생하는 내한성버섯 중 하나여서 너무 춥거나 지나치게 건조하지만 않으면 겨울에 만날 수 있다. 참부채버섯은 식용이지만 맹독버섯인 화경버섯과 비슷해서 헷갈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참부채버섯은 1100고지 주변에서 많이 관찰되며 비교적 고도가 높은 곳에서 주로 발견된다.



▶겨울에도 늘 북풍한설 몰아치는 건 아니니까=제주도는 특히 겨울에도 비가 많고, 육지 지방에 비해 겨울 날씨가 온화하다.

게다가 곶자왈 지역의 숨골에선 바깥세상이 추울수록 더 따뜻한 바람이 수분을 잔뜩 머금고 뿜어진다. 이럴 때 쪼그려 앉아서 숨골 근처를 뒤적거리면 여름에 주로 발생하는 부드러운 버섯인 털작은입술잔버섯과 술잔버섯, 흰애주름버섯, 먹물버섯류 등 작은 버섯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종종 관찰된다. 습도가 높으니 장마철인가보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니 여름이 됐나보다 싶어 버섯도 헷갈리는 거다. 여름에 보이는 털작은입술잔버섯보다 추운 시기에 발생하는 종은 색이 더 진하고 화려하며 생장이 느려서 더 오래 산다. 여름철에 발생했다면 2~3일이면 노화될 버섯이지만 겨울철에 발생하면 열흘에서 보름까지도 살 수 있다. 곶자왈이라는 특이한 환경은 타지역에는 없는 환경이다. 그래서 제주에는 국내 미기록종 버섯이 특히 곶자왈 지역에서 더 많이 관찰된다.



▶오래 사는 버섯들은 사계절을 다 겪기도 한다=마른진흙버섯이나 금빛시루뻔버섯과 같은 딱딱한 버섯들은 몇 달 또는 몇 년에 걸쳐 살아가기도 한다.

약용버섯으로 유명한 상황버섯(목질진흙버섯)은 몇 년 동안 살 수 있다. 눈이 덮인 겨울을 나고 비가 많은 장마철도 보내고 무더운 여름도 우리 인간들처럼 견딘다.

갈색꽃구름버섯, 구름송편버섯 같은 버섯들도 한 번 발생하면 몇 달 동안 계속 나무에 붙어 있는 종들이다. 부드러운 버섯들은 쉽게 물러지거나 벌레에게 먹히기 쉬우므로 오래 사는 버섯들은 자실체가 딱딱한 특징을 갖는다.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고 있어=1년 내내, 버섯이 전혀 없는 시기는 없다. 발생하면 빨리 성장하고 노화되는 버섯의 특성 때문에 비가 많은 시기에 발생하는 종류가 더 다양할 뿐이다. 추위에도 모양이 일그러지거나 냉해를 받지 않는 버섯들은 추위와 관계없이 늘 숲 속에 있다. 그 곳은 그들이 살아가는 터전이고, 그들은 그곳에서 자기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갈 뿐이다.

지난 봄부터 여름과 가을을 지나는 동안 한라일보에 연재해 왔던 버섯이야기도 오늘을 마지막으로 작별한다. 국립공원으로, 곶자왈로, 오름으로 버섯조사를 오가는 틈틈이 만났던 버섯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드릴 수 있어 올 한 해도 행복했다. 버섯이란 생물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올 겨울도 눈이 많이 내릴지 모르겠다. 따뜻한 집안에 사는 우리가 추위에 옹송그리면 야생에서 살아가는 버섯들도 춥다. 말하지 않고 투덜대지 않지만, 그들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과 똑같은 한 종의 생물들이다. 아마 버섯들도 다시 만날 희망을 새싹 품듯 품에 안은 채 추운 겨울을 견디며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는지…. <끝>

<고평열 자원생물연구센터 대표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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