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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16)그날처럼 쪽달이 뜰 때 그는 어디 있을까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1. 12.28. 00:00:00
쪽달이 뜨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인연이 깊었던 사이는 아니지만, 구름이 설핏 지나가는 그의 눈동자를 잊을 수 없을 만큼은 본 것 같다. 1990년 초반 김영갑은 내가 아는 서울의 몇몇 문인들과 교류를 하고 지냈다. 내가 그를 만난 것도 댕기머리를 한 그를 좇아 제주 중산간 들녘을 터덜거리며 다닌 것도 그 무렵이다. 굳이 그럴 필요 없다 해도 검정색 르망 레이서를 몰고 공항으로 나를 데리러 나오곤 했다. 공항을 벗어나면 그는 용두암 근처의 지인이 하는 가리온이라는 카페에 들러 내게 차를 사주었다.

제주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간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은 세 곳이다. 먼저는 '육지 것'으로 제주에 드나들다 힘들면 엎어질 수 있는 곳으로 데려갔는데 그게 용눈이오름이다. 굼부리 어느 곡선 안에 핀 개민들레꽃을 오래 지켜보던 모습이 생각난다. 오름은 내 빈약한 경험과 지식이 알 수 없는 외경(畏敬)이어서 며칠 오름을 헤매다 어느 날 문득 내가 부탁을 했다. 오름이 한눈에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에 데려다 달라고. 그러자 그는 말없이 차를 몰고 가 길이 없는 꽤 광활한 들녘에 나를 내려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무 개 가까운 오름이 있다는 구좌읍 송당리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감물 들이는 겨울 오름에 울긋불긋한 구름 밑으로 석양빛이 떨어질 때 오름은 또 다른 오름이 되어 건너가고 서로 겹치며 모여서 마치 사랑의 시간이 막 열리거나 닫히는 때를 알리는 우주의 종들처럼 은은히 울리는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 구좌읍과 송당리 주변을 수없이 지나다니며 살고 있지만 그때 김영갑이 데리고 갔던 곳을 찾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 그는 자신의 눈에만 있는 좌표 위에 나를 잠시 머물게 해주었는지 모른다. 쪽달이 뜰 때까지 우리는 오름 주위를 걸었다. 오름들이 넘실거리는 중산간 들녘의 생명력은 충일하되 마음을 시리게 하고, 오름의 진경은 눈에 보이지만 속내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말했다. 제주 본디의 풍경이라는 측면에서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은 제주의 한 컷이라고, 앞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한밤중에 간 곳은 그의 집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어느 중산간 지역 낮은 슬레이트집에서 살았는데 그 앞에 알 수 없는 비닐하우스 집이 한 채 신비롭게 서 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거기서 그는 쌓아둔 필름들을 보여주었다. 삶의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모두고 보듬어 가며, 눈보라가 들녘으로 몰려가고 눈앞을 가려도 꼼짝 않은 채 눈도 바람도 곧 지난다는 양 묵묵히 필름을 쌓고 있었다. 내 시도 늘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시를 하면서 가지고 가야 할 자세를 그는 내게 보여주었다.

그는 기다리고 기다리면 제주의 자연이 '사람의 것'이 된다고 했다. 가끔 표선 앞바다까지 드라이브를 나가 해안도로를 달리다 멎으면 수평선을 바라보다 뒤돌아선다. 보이진 않지만 그쪽에 김영갑의 두모악이 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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