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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진의 하루를 시작하며] 책 배송 서비스의 딜레마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입력 : 2022. 01.12. 00:00:00
제주에서 서점과 꽃집을 같이 운영한 지 5년 차가 됐다. 이주하고 첫 해에는 필요한 물건들을 멋모르고 다 인터넷으로 주문했다가 곤란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추가로 붙는 배송비는 그렇다 치고 그 배송비만큼 내가 포장재를 구입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도한 포장에 그걸 뜯고 분리해서 버리는 것도 큰일이었다. 특히 꽃집에서 쓰는 부자재들의 경우 파손 위험이 높은 것들이 많아서 물건의 두세 배 부피의 박스가 오는 게 보통이었다.

책은 다른 이유로 비슷했다. 책이 찌그러진다거나 표지가 구겨지는 등 훼손이 되었을 때 상품 가치가 떨어지다 보니 각종 충전재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보내는 곳에선 다른 지역보다 긴 여정에 행여 물건이 잘못될까 우려한 거겠지만, 매번 포장을 뜯을 때마다 가뜩이나 환경 문제가 심각한 제주에 더 나은 대안은 없을까 고민이 됐다. 그래서 디어마이블루에서 '비밀택배'라고 하는 책 추천 배송 서비스를 실시하면서는 책 사이즈에 최대한 딱 맞는 전용 박스를 제작하고, 종이 포장재도 최소한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육지에 사는 손님이 친구에게 깜짝 생일선물로 비밀택배를 주문하셨다. 알려주신 친구분의 취향과 성격을 고려해서 책을 고르고 정성껏 포장해 손님의 메시지 카드까지 넣어서 보내드렸는데, 며칠 뒤 책을 주문하셨던 손님이 난감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친구분이 책을 받았는데 한쪽이 물에 다 젖은 상태로 도착했다는 것이다. 사진을 받아보니 과연, 책 상태가 엉망이었다. 안에 같이 넣은 메시지 카드의 글씨는 번져서 알아볼 수도 없었다.

너무 죄송한 마음에 원인을 찾아보니, 택배 회사의 트럭에 같이 실었던 냉장식품에서 물이 새어 나와서 박스가 젖었다는 것이다. 기사님은 박스가 젖은 것과 안에 내용물이 책인 것도 알고 계셨지만, 당연히 일반적인 에어캡에 싸여 있을 거라 생각해서 책이 그 정도로 손상됐을 거라고는 생각 못 하셨다고 했다. 배상 처리를 한 후 손님께 다시 책을 보내드렸으나 디어마이블루의 신용에 금이 간 것은 회복할 수가 없었다.

이후로는 이런 불가피한 경우나 눈, 비가 올 경우에 종이 포장재만으로는 혹시라도 책이 젖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불안해져서 최소한의 비닐 래핑으로 책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환경 문제에 대한 많은 얘기들이 나오고 요새 기업들에겐 소위 ESG 경영이 가장 큰 화두다. 디어마이블루같이 작은 가게들은 여러 한계로 소소하게 힘을 보탤 수밖에 없지만, 좀 더 큰 회사들이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코로나 덕분에 오히려 기록적인 매출 증대를 이룬 대형 인터넷 서점 같은 곳에서 비닐이나 에어캡을 사용하지 않는 더 나은 책 배송 방법 같은 걸 고민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지금으로선 각자의 위치에서 환경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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