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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한라칼럼] 제주도에서 발아된 무술의 꽃 태권도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입력 : 2022. 01.18. 00:00:00
트롯에 태권도를 접목시킨 가수 나태주가 자랑스럽다. 노래에 곁드린 태권동작이 가히 예술의 경지이다. 태권도 공연시범단이 세계를 누비며 무술을 예술로 승화시키고 있다. 세계인의 감동과 찬사를 받는 시범단 역시 자랑스럽다. 더해 제주도에서 시작된 태권도 역사를 공유한다면, 태권도에 대한 우리의 애정과 자부심 또한 배가될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 다음해인 1951년 모슬포에 육군 제1훈련소가 들어섰다. 그리고 1953년 태권사단이란 별칭이 붙은 29사단이 제1훈련소에서 창설되는데, 사단장 최홍희 장군의 태권도에 대한 각별한 사랑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전통무술 태껸에서 영감을 얻은 장군은 태권도라는 이름으로 장병들의 무술연마를 실시케 하는 한편, 부대원 상호간의 경례구호 역시 태권으로 정했다. 특히 29사단과 태권도의 발상지를 알리는 기념비적인 주먹탑을 1954년 대정읍 상모리에 세웠다. 높이 5m 조금 넘는 삼각형 탑신 각면엔 당시의 주요 군간부 이름과 함께,'健康한 體力.徹底한 訓練.滿滿한 鬪志'라는 친필을 새기고, 탑신 맨 위에는 한반도 도안을 넣은 태권도 상징 주먹탑을 얹졌다. 이후 군에서 행해지던 태권도는 민간인에게도 파급되고, 군이 주최하는 태권도대회가 지역에서 열리기도 했다.

어려서 서예와 태껸을, 일본 대학시절에 가라데를 익힌 장군은, 징용으로 끌려간 군대에서 항일학병동맹을 조직하다 검거돼 복역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이후 국군창설요원의 영어군사학교를 수료해 국방경비대에 들어간 장군은, 미육군 군사학교를 마친 직후 발발한 육이오전쟁으로 귀국, 사단장이 돼 제주에 왔다. 1958년 대한태권도협회와 1966년 국제태권도연맹을 창립한 장군은, 군을 떠나 유신에 반대하다, 1972년 캐나다로 망명, 수 차례 방문한 평양에서 2002년 사망한 후 북한의 혁명열사릉에 묻혔다.

한편 군사정권이 들어선 1985년 어느날, 29사단이 세운 주먹탑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친북 성향의 최홍희 장군 지우기가 주먹탑 파괴와 매몰로 나타난 것이다. 다행히 대정읍 시민단체들이 태권도 발상지가 모슬포라는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사라진 주먹탑을 찾고자 한마음으로 뜻을 모았다. 그리고 2000년 대정읍 개발협회 등에서 탑 매몰 추정지 일대에서 세 쪽으로 파괴된 주먹탑을 찾아내, 원형에 가깝게 상모리 농남못 곁에 복원하기에 이른다.

반갑게도 세계태권도연맹에 가입된 나라(210국)는 국제올림픽위원회 소속 206국보다 많다. 이렇듯 태권도가 세계인의 인기를 누리는 것은, 남을 공격하기 보다 자기 방어를 위한 무술이라는 평이 그 중 하나일 게다. 태권도 세계시범단의 '승리보다 더 소중한 평화'라는 메시지가 또한 대변하고 있다. 이에 더해 대정읍민에 의해 찾아내 복원된 주먹탑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된다면, 국내외를 향한 제주인의 평화 메시지도 함성이 돼 퍼질 것이다. <문영택 (사) 질토래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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