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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의 한라칼럼] 제주4.3, 진정한 봄을 맞는가
김병준 기자 bjkim@ihalla.com
입력 : 2022. 03.29. 00:00:00
어느새 따스한 봄, 4월이 다가오고 있다. 계절은 어김없다. 산천초목이 서서히 새싹을 틔우고 있다. 또 며칠 있으면 우리 현대사의 비극인 '4·3'이 74주년을 맞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다. 강산이 무려 일곱차례나 변하고도 남을 그런 시간이 흘렀다. 참으로 길고도 긴 세월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물론 4·3을 겪은 희생자나 유족에겐 '똑같은 시간'일 수 없다. 인간사의 희로애락(喜怒哀樂) 중 '노(노여움)'와 '애(슬픔)'로 점철된 삶이었다. 4·3으로 가족이, 친족이 모두 억울하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어떻게 기쁘고(희) 즐거울(낙) 수 있겠는가.

다시 '4·3의 광풍'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참혹했다. 당시 국가 공권력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달리 피바람이 불었던 것이 아니다. 마을주민 수백명을 한 장소에 불러놓고 몰살했다. 무고한 양민들이 형무소로 끌려가 목숨을 잃거나 행방불명이 됐다. 이름만 남은 행불인이 4000명에 이를만큼 너무나 끔찍했다.

고립된 제주섬에서 마치 동물사냥 하듯이 '인간사냥'이 이뤄졌다. 수많은 도민이 무슨 죄인지 모르고 군·경에 끌려가 처참하게 죽었다. 아직도 4·3으로 숨진 희생자가 정확하게 몇명인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 집계조차 안되겠는가. 실로 어처구니 없고, 기가 막히는 일이 제주에서 벌어진 것이다.

국가 공권력이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 왜 그토록 제주4·3을 감추려 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국가 공권력의 과오를 방증한다. 그래서 '4·3'은 그 자체가 금기어가 됐다. 반세기 가까이 4·3은 입밖에 꺼내지 못한 이유다. 그렇다고 진실이 영영 묻혀지겠는가.

결국 베일에 쌓였던 4·3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곧이어 제주4·3특별법이 만들어졌다. 그 후 대통령의 공식 사과, 4·3희생자추념일 지정 등이 뒤따랐다. 특히 희생자의 보상을 담은 4·3특별법이 개정되면서 큰 전기를 맞았다. 4·3 때 영문도 모른 채 옥살이를 한 피해자들도 무죄판결을 받는 등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만시지탄이다. 비로소 4·3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 4·3에도 희망의 꽃봉오리가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 봄의 길목에서 암초를 만났다. 4·3희생자 재심 절차가 검찰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검찰이 4·3희생자 재심 개시 결정에 불복해 항고한 것이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불길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알다시피 검찰은 4·3피해자를 위해 후원자를 자처하고 나섰잖은가. '4·3사건 직권재심 합동수행단’까지 꾸린 그 검찰이 맞나 싶다. 하필 항고장을 제출한 날이 지난 10일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가 승리한 날이 아닌가. 그동안 보수정권은 4·3문제에 대해 숱하게 딴지를 걸었다. 그런 터라 검찰의 행보가 미심쩍다. 4·3 해결에 역행한다는 지적은 오해인가. <김병준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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