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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38)파리와 베네치아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2. 06.14. 00:00:00
파리와 베네치아를 15박 16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아직 팬데믹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출입국 절차도 까다로운 편이라 걱정이 앞서긴 했다. 특히 파리에서는 거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 속에서 지내야 해 불안도 컸으나 얻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조그만 북 콘서트가 있었다. 그 하루는 짧게 지나갔고, 팬데믹 이전의 해외 낭독회나 초대 강연과 별다를 게 없었다. 그들은 호들갑을 떨거나 과장하지 않으며 그런 자리가 일상인 것처럼 행동한다. 작가를 대할 때에도 찬사를 빼놓지 않지만 끝나면 술을 마시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레 헤어진다. 나도 내가 알아서 자리를 뜨면 된다.

부러운 것은 예술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다. 파리는 외국인일지라도 예술가 증명이 있고 어딘가 예술단체에 소속만 하면 생활비가 나온다. 오래 방치된 공공건물에도 예술가는 들어가 자기 작업실을 꾸리고 작업을 할 수 있다. 법적으로 재산권 훼손이나 무단거주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래피티라 해서 허락 없이 멀쩡한 남의 집이나 가게 벽에 시커멓게 낙서를 해놓고 가도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주인은 그게 맘에 들지 않으면 파리 시에 전화를 해 지워달라 하고, 그러면 물대포를 쏘는 물차가 새벽에 나타나 물로 씻어내고 청소를 해주고 가는 것이다. 누군가 낙서하는 것을 예술적 행위로 용인해 주되 누군가 그걸 싫어하면 시에서 나와 예전대로 복원해 주는 식이다.

마침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어 이탈리아로 날아가 베네치아를 걸었다. 운하를 따라 길을 찾아가며 약 100군데에서 열리는 수백 개의 전시를 보는 것은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에 젖게 한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127년 역사도 역사지만 58개국 213명이 본전시에 참가하고 같은 기간 병설 전시, 특별전, 거장들의 회고전 등 300명에 이르는 작가의 그 많은 전시관을 작은 도시에 6개월 동안이나 꾸릴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궁전, 성당, 고택, 미술관 등에 차려진 수많은 전시관은 산타루치아역에 도착해 배를 타고 섬의 끝부분에 있는 본 전시장까지 가는 사이 미로 곳곳에 널려 있다.

내게는 이런 공간 활용 풍토가 부럽다. 궁전을 궁전대로 그냥 보존하는 게 아니라 자유롭게 활용해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게 그들의 문화유산관이며 감성이다. 작고 문인의 문학관이라고 초가집 한 채 떨렁 지어놓고 손끝 하나 대서는 안 된다며 출입금지 시키는 우리들이 '우스꽝스러운 촌놈'처럼 여겨진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겐 고뇌가 적다. 모양만 있고 생명력이 없는 제주민속촌도 슬기롭게 생각해 보면 활용 용도가 많을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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