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한라라고 하는 것은 운한을 잡아당길 만큼 높다는 뜻으로 붙은 이름이다.' 여기서 말하는 운한이란 은하수를 지칭한다. 이런 내용은 ‘동국여지승람’에 최초로 기록한 이래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의심의 여지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책은 1530년 경에 간행했으니 약 530년 전 일이다. 그러나 이 설명은 한편 의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 운한을 왜 잡아당겨? 고유어 '미리내'는 왜 빠졌을까? 천상열차분야지도(부분) 서울대 규장각소장.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한라산의 별칭이라면서 기록한 한라산 이외의 명칭들을 살펴보자.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런 이름을 부른 사람들은 누구였는지도 밝혀질 것이다. 전형질분석이란 게 있다. 주로 생물계통학에서 쓰는 방법인데 어떤 종간에 유사한 정도를 알기 위해 자료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의 하나다. 이 분석 원리 중에 '가능한 모든 형질을 분석에 사용한다'는 것이 있다. 한라산의 뜻을 밝히기 위해 가능한 모든 언어 계통을 동원해 분석해 보자. '한라산' 첫 기록은 고려사 한라산의 여러 별칭 중에서 끊임없이 따라붙는 것이 두무(頭無)라는 이름이다. 한라산이라고 하는 이름이 처음 나올 때부터 지금까지다. 문헌에 나오는 최초의 기록은 ‘고려사’에 나오는 다음 기사다. ‘고려사’란 1449년(세종 31)에 편찬하기 시작해 1451년(문종 1)에 완성된 고려 시대 역사서를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571년 전에 나왔지만 상당히 신뢰할만한 책이다. 여기에는 "진산인 한라산은 탐라현 남쪽에 있는데, '두무악' 또 '원산'이라고도 한다. 그 산꼭대기에는 큰 못이 있다." 카라코람 산맥에 위치한 해발 6010m 미트레봉에서 촬영한 은하수. 위키메디아 커먼스. 충암선생집 ‘제주풍토록’에도 나온다. ‘제주풍토록’은 작자 김정이 1519년(중종 14) 11월에 일어난 기묘사화로 진도에서 제주도로 이배됐던 1520년 8월부터 사사되던 1521년 10월까지의 체험기록으로, 지금부터 약 501년 전 기록이다. "또한, 산봉우리가 모두 다 오목하여 가마솥과 같이 움푹하여 진창을 이룬다. 모든 봉우리가 다 그러하므로 두무악이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은 1530년(중종 25) 이행(李荇) 등이 ‘동국여지승람’을 증수, 편찬한 책이다. 지금으로부터 492년 전 기록이다. "한라산은 주 치소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으로 한라라고 하는데, 운한을 끌어 당길만하기 때문이다. 또한, 두무악이라고도 하는데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하기 때문이며, 원산이라고도 하는데 산이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그 봉우리에 큰 못이 있으며, 큰소리치면 운무가 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별칭 '두무' ‘동국여지지’는 1656년 실학자 유형원이 편찬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찬 전국지리지다. 여기에도 유사한 기록이 나온다. "한라산은 주 남쪽 20리에 있는 진산이다. 한라라고 말하는 것은 운한을 끌어 당길만하기 때문이다. 혹은 두무악이라 하니 봉우리마다 평평하기 때문이요, 혹은 원산이라고 하니 높고 둥글기 때문이다. 또한, 부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있는데 물을 담는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탐라지’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 책은 1772년 허목이 편찬한 전라도 제주읍지를 말한다. 지금부터 약 250년 전 책이다. "주의 관청은 두무악 북쪽에 있는데, 북쪽 지역은 항상 북풍이 많아 나무들이 모두 남쪽을 향하여 기울어 있다. 정의와 대정 두 현은 두무악의 남쪽에 있는데, 남쪽 지역은 바람이 없고 진한 안개가 많아서 낮에도 어둡다. 두무악은 한라산의 별칭인데, 또한 부악(釜嶽)이라고도 한다. 위치는 주의 관청에서 남쪽으로 20리 지점에 있는데, 여러 봉우리가 있고 봉우리마다 못이 있으며 지세가 평평하기 때문에 두무악이라고 한다." 한라산, 두무악, 원산, 두모악, 부악 등은 조선 500년 내내 등장하는 이름들이다. 그리고 그 뜻 모두 거의 베껴 쓴 듯 유사하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두무'는 무슨 뜻일까?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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