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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46)성산포문학회 다이어리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08.09. 00:00:00
[한라일보] 성산포문학회 초청으로 문학강좌를 가 시에 관해 소담한 발표를 하고, 성산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성산포하면 떠오르는 일출봉은 성산포의 상징이며, 관광객이 가장 많이 다녀가는 제주의 명소이다. 그렇지만 예로부터 성산포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했던 곳은 어항이었다. 모든 갈치잡이 배들이 모이는 곳이며 원양 갈치 배들의 전초기지였던 성산항은 그 선원과 어부들을 상대로 하는 많은 가게와 음식점, 술집들이 모여 노래도 성했다.

우도가 바라보이는 일출봉 북쪽 오정개 해안엔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가 있고, 19편의 시가 새겨진 대리석들이 반원을 그리며 바다를 향해 나지막하게 박혀 있다. 사실 이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는 성산포문학회와 관련이 깊다. 당시 성산포 이장이 자문을 구해와 2010년에 성산리마을회 주최로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를 제막하고, 그 후 성산포문학회 주관으로 매년 4월 '그리운 바다 성산포' 행사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생진 시인은 어느 해 성산포에 여관을 빌려 한 달을 지내며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담뱃값 정도 버는 작은 출판사 '동천사'에서 책이 발간돼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시인도 출판사도 단박에 유명해졌다. 바다를 익숙하게 느끼게 하는 멜랑콜리하면서 쉬운 언어로 섬의 일상과 바다의 풍경을 표현해온 이생진 시인은 만재도에서는 뱃사람 윤씨를, 소모도에선 백발의 섬 할머니를 소재로 삼고 무명도에선 자신의 그리움을 달래는 식인데, 그런 그가 성산포에 반해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써서 그 시집으로 제주도 명예시민이 됐다.

이승익 시인은 "요즘 젊은 사람들이 노인네들의 일을 기억할는지 모른다"며 성산포문학회를 계속해온 이유를 밝혔다. 누군가는 성산포를 기록하고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어야 살아 있는 성산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2008년에 창립한 성산포문학회는 현재 20명 정도의 회원이 활동하고 반 정도는 정식으로 데뷔한 문인들이라고 한다.

"더러 성산포에서 제일 아름다운 바닷가에 외지 시인의 시비 세운 일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편협하면 안 된다. 이생진 시비를 세운 게 아니라 '그리운 바다 성산포' 시비를 성산포 주민들이 세운 거다. 일본 나오시마 예술의 섬엔 이우환미술관이 있고, 서울 남산과 부천 진달래동산엔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비가 있다. 그런 사례는 특별할 것도 없고, 세계 도처에 흔한 일이다. 예술이란 그래서 좋고, 필요한 것이다."

보아하니 그들 사이엔 이생진 시인의 시처럼 심정적으로 낯익고 쉬운 말이 있었다. 그 말이 그들의 모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추억을 만들고, 꼭 문학을 한다는 게 아니라 내게는 문학이 있다는 듯이 살아가면서 만남을 부추기고 있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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