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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2] 2부 한라산-(8)두무악은 무슨 뜻인가?
제주서 생소한 두무·두모, 한라산 이름으로 표기 의문
최다훈 기자 orca@ihalla.com
입력 : 2022. 09.13. 00:00:00
'솥처럼 생긴 산'이라는 주장


[한라일보] 1519년 김정 선생께서 쓰신 제주풍토록에 우리의 언어습관과는 동떨어지게 두무악이라 했다는 점은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 20세기 초까지도 일관되게 이렇게 써 왔는데도 이런 조어 형태가 부자연스럽다고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을까?

백두산의 머리는 어디인가. 박용국 제공

조금 다른 해석도 살펴보자. 1656년에 간행한 ‘동국여지지’에는 "부악(釜岳)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 산꼭대기에 큰 못이 물을 담는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다. 그 10년 후에 나온 ‘남사록’이라는 책에는 "또 '두모악(豆毛岳)이라고도 하는데 봉우리마다 있는 못이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닮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19세기 중반에 나온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부산(釜山)이라고도 했다. 이는 산봉우리마다 있는 못이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라고 나온다. 20세기 초에 나온 ‘중보문헌비고’라는 책에는 우선 "한라산은 '원산'이라고도 한다. 은하수를 붙잡고 잡아당길 수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다음 문장이 눈길을 끈다. 즉, "산봉우리 맨 위는 모두 평평하고 둥근 못이 있어 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산(釜山)이라고 했다. 세속에서 일컫기를 솥을 '두무'라고 하기 때문에 또한 '두무'라고도 했다"라는 부분이다. 두무를 '머리가 없는'의 뜻으로 해석한 것이 대부분인데 이 책 만큼은 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부산(釜山)이라고 하고, 솥을 두무라고 하기도 하므로 두무악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한라산을 두무악이라고 한 외의 내용은 대략 이와 같다. 두무악 또는 두모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물을 저장하는 그릇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부악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물을 담는 그릇과 같기 때문이다. 솥을 두무라고도 하므로 솥이라는 뜻의 부(釜)를 써서 부악(釜岳)이라고 쓰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무'라는 말로 수렴한다.



두모가 무슨 뜻?


물을 저장하는 그릇 중에 '두모(豆毛)'라는 것이 무얼까? 이 말은 국어대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아주 드물게 사용하는 이두식 언어다. 1829년경 이두 및 이문(吏文) 어휘를 모아 수록한 어휘집으로 ‘이두편람’이 있다. 여기에서 이문이란 표준국어대사전은 "명사; 문학, 조선 시대에 중국과 주고받던 문서에 쓰던 특수한 관용 공문의 용어나 문체로서 자문(咨文), 서계(書契), 관자(關子), 감결(甘結), 보장(報狀), 제사(題辭) 따위와 같은 문서에 썼다"라고 설명한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말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이두편람’에 두모라는 말이 나온다. 두모란 '수철대정저수자(水鐵大鼎貯水者)'라고 돼있는 것이다. 쇠로 만든 큰 솥으로 물을 저장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이 책은 우리말과 한자의 독법이 특이한 어휘, 즉 '자문', '환자' 따위를 모아놓은 것으로서, 우리말의 경우는 차자표기로 적고 한글로 토를 달았으며 뜻풀이는 한문으로 했는데, 행정용어 및 도량형의 단위, 특수명사 등 182개를 자수별로 배열했다. 그중에 나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두모'라는 말을 '두멍' 또는 '두명'이라고 읽는다고 했다. 그럼 '두멍'이란 무엇일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물을 많이 담아 두고 쓰는 큰 가마나 독"이라 풀었다. "머리 위에 무쇠 두멍이 내릴 때가 멀지 않았다"라는 용례를 제시했다. "무쇠 두멍이 머리에 떨어지면 살아날 리가 없는 것이니,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저주해 이르는 말"이라 한다. 함경 방언으로 '두무'라 한다고도 했다. 사전적으로 두멍은 쇠로 만든 큰 그릇이라는 뜻에 무게가 있다. 이 말이 ‘동국여지지’, ‘남사록’,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이 쓰일 당시는 '두무'라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두멍' 혹은 '두명'이라 했었다 해도 이두식으로 쓰면서 '두모'라고 한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도민과 거리 먼 생활 도구 이름을?


그렇다면 ‘동국여지지’와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말하는 물을 담는 그릇, ‘중보문헌비고’가 말하는 솥을 두무라고 한다는 내용, ‘남사록’에 두모악의 두모는 물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 것은 모두 이 말을 차용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제주특별자치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제주인의 삶과 도구 총서 Ⅰ. 애월읍 편’을 2015년도 발간한 이래 2021년도까지 꾸준히 발행해 9권째에 이르고 있다. 이 자료에는 제주도의 지역별 생활 도구들을 사진과 함께 명칭이 실려있다. 그런데 이 9개 읍면의 조사자료에 '두멍', '두무' 또는 그 어떤 유사 단어도 실리지 않았다. 이런 사실로 볼 때 제주도에 이런 생활 도구가 있었다거나 그런 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기는 어렵다. 설령 있었다 해도 매우 드물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옛날에는 있었을까? 똑같은 뜻으로 사용한 '두모'를 "조선 시대에 중국과 주고받던 문서에 쓰던 특수한 관용 공문의 용어"를 모아놓은 ‘이두편람’에 실은 걸 보면 일반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사실 '두모(豆毛)'란 한자는 콩 두(豆)와 터럭 모(毛)로 돼있어서 쇠 혹은 그릇과 관련짓기가 어렵다. 그러니 이건 두모라는 말을 한자로 받아적은 차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머리가 없다라고 푸는 두무(頭無)하고도 아주 다르다. 결국 '두모'나 '두무'는 모두 차자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용을 보면 두모가 됐건 두무가 됐건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는 쓰지 않는 말이다.

그런 말을 제주도의 중심에 있으면서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거대한 산의 이름으로 썼다는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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