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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석의 하루를 시작하며] 사물.현상에 대한 섭리와 이성의 성격 특성 소고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12. 00:00:00
[한라일보] 산책로 바닥 위를 지렁이가 기며 죽어가고 있거나 또는 말라 죽어있는 비참한 모습을 목격하고 얼마 전 이런 모습의 지렁이를 망서림과 선택의 기로에서 구해줬던 추억이 떠올랐다. 지렁이가 뜨거운 햇볕에 말라 죽을까 봐 작은 나뭇가지로 집어서 길가의 풀숲에 넣어주려는 무렵 30여 미터 전방에 살아있는 지렁이를 한입 가득 물고서 어디론가 날아가려는 듯한 한 마리 까치가 보였다. 아마도 둥지로 빨리가서 배고픈 새끼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어미 까치인듯 싶었다. 그러면서 필자의 이런 모습을 발견하고서는 "산책하시는 노인이시여! 죄송하오나 그 지렁이를 그냥 두시고 가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금 저가 물고 있는 지렁이로는 새끼들의 먹이로 부족하여 다시 먹이 사냥을 와서 그 지렁이를 물어갈 것이니까요" 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어미 까치와 지렁이 두 입장 중 어느 쪽을 택해서 구해줘야 좋을지 잠시 망설여졌다.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이성 두 가지 측면에서 검토해 볼 수 있다. '섭리(攝理)'와 '이성(理性)'의 사전적 의미 를 살펴보면 각각 '세상과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하느님의 뜻,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 '감정에 빠지지 않고 조리 있게 일을 생각하여 판단하는 능력, 감각적인 능력에 대하여 개념적으로 사유(思惟)하는 능력'이라고 정의되고 있다. 인간과 동·식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각각 이성(理性)과 본능(本能)에 의해서 살아가도록 피조된 생물체임을 알 수 있다. 섭리는 신의 의지에 의한 신의 속성으로서 사물·현상에 대한 이치를 궁리(연구)의 필요성 없이 밝혀내는 완벽한 절대적 원리인데 비해 이성은 신의 의지에 의한 인간의 속성으로서 위의 완벽한 절대적 원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적 사유에 의한 지속적인 궁리(연구)와 수정·보완으로 보다 나은(좋은·완벽한) 원리를 모색해 감으로써 인류 공동체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발전시켜 가는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의 지렁이와 까치 양자의 딱한 입장은 자연의 섭리에 의한 자연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중 어느 한쪽을 택하는 일은 자연의 섭리에 의해서 택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인간의 이성적 사유에 의해 '한끼 먹이'보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목숨'이 더 가치롭고 소중함을 검토해 봄으로써 바르게 선택될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이상의 논의에서 필자는 지렁이를 산책로에 원래대로 그냥 두고 하던 산책길을 50여 미터 더 걸으면서 까치 새끼의 한끼 먹이보다 지렁이 목슴을 먼저 살려야 한다라고 판단해 두고 온 지렁이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 갔다. 지렁이가 무사해 있었다. 얼른 지렁이를 풀숲에 넣어주고 산책을 마저 끝냈다. 그 후부터 산책로를 걸을 때면 작은 배려로 한 생명 살린 보람이 추억되어 눈 앞을 스치곤 한다. <정한석 전 초등학교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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