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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57)먼 곳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0.25. 00:00:00
[한라일보] 육지에 사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와 통화를 하는 중에 그가 물었지요. "황 선생은 왜 제주에 사시는 거지요?" 딴 이야기를 나누다 갑자기 제주에 사는 이유를 묻자 좀 당황스러웠던 건 사실입니다. 보통의 지인들은 내가 제주가 좋아 제주에 산다고 여기기에 이유까지 굳이 물어오는 일은 드뭅니다. 어쨌든 그 대답은 어려운 게 아니지만 문제는 내가 뭐라고 말해도 그게 사실의 일부이지 전부가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왜 제주에 사는지 나 자신도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거지요. 어느 날 그냥 제주에 살기를 시작했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는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다. 나는 크면 어디로 갈까, 나에겐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그런 기대와 궁금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멀리 가야지, 가장 멀리 가서 살아야지, 라는 마음이 있었고요. 그곳이 어떤 곳이든 멀기만 하면 되는 그런 꿈을 꾸었다고 할까요. 이 세상에 정말 아프리카가 있을까, 그거 어른들이 만들어낸 거짓말 아냐? TV가 없던 어린 시절에 이런 호기심이 있었으니까 결국 삼십 대 후반에 아프리카에 가 여러 해 살기도 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20년 동안 구호단체 일로 아프리카를 들락거리고 캐나다 인디언보호구역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게 모두 내 삶터에서 먼 곳이었지요. 전남 강진 외진 해안선에 초가집을 짓고 대학에 출강했으며, 다도해가 시작되는 고흥 물가에 집을 짓고 서울 사무실을 왕래하며 오래 살았으니 모두 '먼 곳'을 충족시켜 주는 장소성을 가지고 있었네요.

어느 날 김훈 소설가가 자전거 여행을 하다 찾아와 그 고흥집에 '남만'이라는 옥호를 볼펜으로 써주고 갔습니다. 남쪽 오랑캐의 집이라는 뜻으로, 어떻게 주위에 인적 하나 없는 절벽 밑, 바닷물이 바로 마당에 닿는 곳에 집을 짓고 살 수 있는가. 오랑캐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고 했던 거지요. 그 산천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너무 외롭지 않겠느냐는 걱정을 해준 셈입니다.

그런데 먼 곳엔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얼마 전 성산포에서 문학 특강을 하고 질문을 받는데 한 분이 내게 물었습니다. '제주의 보석'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나는 '제주 사람들'이라고 답했습니다. 서울에서 보면 제주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이었고 제주 사람들은 내게서 가장 먼 곳에 사는 사람들이었지요. 그들에겐 내가 이방인이라고 할 때 나에겐 그들이 이방인일 수 있는데, 우리가 서로 이방인으로 더불어 아늑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그런 측면의 질문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내게 집이란 먼 곳에로의 떠남과 돌아옴이 교차하는 플랫폼 같은 공간이며, 어쩜 인간에겐 그런 곳이 가장 편안함을 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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