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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제주살이] (64)그녀를 방문했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2. 12.13. 00:00:00
[한라일보] 그녀를 방문했다. 음악은 없었지만 집 안 어디엔가 선율을 지닌 바람이 다니는 것도 같았다. 부락의 끝자락에 위치한 그녀의 집은 마을 당근밭과 닿아 있으며, 그녀의 집터 또한 지난날 당근밭이었다. 입구에 있는 첫 번째 건물은 서재이자 일종의 사랑채이다. 강력계 형사반장으로 밤낮 현장을 뛴 경찰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근년에 명예 퇴직을 한 그녀는 거기서 손님을 맞았다. 그리고 꽃차를 만들어 내왔다. 그녀의 실내공간은 신발을 신고 들어가 툇마루에 앉는 느낌으로 다가와서, 이내 신발을 벗고 앉거나 누워서 책을 볼 수 있는 마음으로 이끄는 계단형 사랑채 형식이다. 그리하여 방문자는 여기 어느 층계참에서 잠시 세상사를 던져놓고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암시를 풍긴다.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그녀의 언니가 감자떡과 포도즙에 들깨를 탄 경상도식 전통 음료를 만들어 건너오셨다. "그냥 드셔보세요"라는 아름다운 말을 들었다.

그녀는 구좌읍 하도리에 산다. 고향인 경북 영덕과 환경이 비슷한 곳을 찾아 이주한 것인데, 어린 소녀는 매일같이 영덕 밤바다 소리를 들으며 일기를 쓰고 잠자리에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특히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한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세간에 잘 알려진 그녀의 이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 글에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그녀가 한국 '여경(女警)의 전설'이라 불리고, 한국 최초의 강력계장을 맡은 여성이며, 지금도 그 기록은 유일무이하다는 것은 부언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큰 사건들을 많이 맡은 것은 일과의 인연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일들을 직업적으로 완수해낸 비결은 분명히 그녀의 각별한 노력과 능력 그리고 여성의 장점을 살린 결과물이다.

지형물들 사이로 우도봉이 멀리 바라보이는 마당에 그녀는 자신의 집과 공방 등을 마련했다. 살인 같은 강력 사건의 범인을 쫓고 범인의 진술을 끄집어내고 그 범죄의 진상을 밝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가리고 살았을 수 있고, 피해자나 가해자의 감정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았을 수도 있다. 그녀는 말했다. "지금은 그냥 제주를 안고 하루하루 살아간다. 또박또박." 아마도 지금까지 자신을 이끈 가치, 인간 감정과 관계에 대한 생각, 그런 것을 새롭고 다른 세계에서 확장하며 살려는 것 같았다. 잽싸고 빈틈없는 걸음새로부터 나지막하고 느린 걸음새로 방향을 돌린 채.

우리는 그 무엇엔가-그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어떤 사물이든 간에-빚을 졌다는 사실을 잊거나 그런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 쉽다. 우리 사회는 그녀와 많은 그녀들에게 수고 많았으며 고맙다, 라는 말을 해야 한다. 인간관계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한 일을 했다는 말이 있을 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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