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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주의 詩읽는 화요일] (3)돌아서 오는 길(허영선)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입력 : 2023. 01.17. 00:00:00
어느새 저 위세 등등한 호박 넌출 마음마저 앗아가

갯질경 찰싹 달라붙은 가슴으로 돌아오는 길

차마 당신 마음의 넌출 하나 당기지 못해

초췌한 바랑 하나 짊어진 수행자처럼

가파른 심장의 협곡만 타 넘었습니다

오리나무 싸리나무 상수리나무 후박나무 아카시나무



알던 꽃도 눈 밖으로 나가 화끈거리던

그날 새벽

우수수 당신 눈동자로 우거지던 바람까마귀 떼

한 치 앞도 안 보이게 무덕지더니

엉겅퀴 살코지에 비수처럼 찔린 탈골한 사랑의 등골 하나

궂은날 삭신 으깨듯 허리께의 통증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삽화=써머



돌아서 오는 길은 '당신'에게서 돌아서 오는 길이지만, 나아가려는 삶으로부터 되돌아서는 길이다. 그런 길은 돌아선다고 멈춰지는 것이 아니다. 돌아섬은 아직은 미완성 상태이다. 돌아가는 자를 비수가 찌르고, 등골을 부수며 달려드는 통증이 그 증거이다. 그럴 때 인간은 가장 순수해지고 진솔해진다. 때마침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게 시간은 새벽이고, 당신의 마음을 당기지 못한 내 마음은 갯질경이 들러붙은 듯 거칠고 갈라진다. 당신은 뒤쪽에 있다. 어쩌면 나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아픔이라는 폭풍에 떠밀려 당신이 있는 뒤쪽으로 자꾸만 날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초췌한 바랑 하나 짊어진 수행자는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제야 사랑의 길을 떠나는 수행자일 수밖에 없다. 눈동자에 까마귀 떼가 우거져 당신을 볼 수 없고, 당신을 보지 못해 내 앞날이 보이지 않는 그 한가운데를. 안녕, 이라고 말하면서. 그리하여 이제부터 나는 당신을 잊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잊는 연습을 해야만 하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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