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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우의 한라칼럼]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다시 읽다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3. 02.21. 00:00:00
[한라일보] 입춘이 며칠 지난 어느 날 친구의 메시지를 받았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고향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제주를 다녀갔던 친구였다. 젊음이 사라진 낯선 얼굴을 서로 보다가 '고향도 아예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고 한라산 아래는 아예 작은 서울로 변해버렸으니 이젠 다시 제주를 찾는 일 없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메시지는 '우리에게 영원하리라 여겨졌던 것들도 이제는 변하려 하고 있다'는 간단한 문장과 그 아래 '시애틀 추장을 생각하시길…'이라고 덧붙여 있었다.

수천 년을 살아왔던 땅을 거의 백인에게 점령당하고 종족마저 거의 멸절 단계에 들어설 때 미국 대통령이 인디언들이 사는 땅을 사겠다는 말에 대한 대답을 되새겨보라는 의미였다. 시애틀 추장은 그들이 처한 절체절명의 처지와 운명을 예견하며 연설했다. 내용을 이렇다.

"백인추장(피어스 대통령)이 자신들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이 총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땅을 빼앗아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사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 검은 숲속에 걸린 검은 안개는 우리들의 소유도 아닌데 어떻게 팔라고 하는지. 땅은 우리 자신들이고, 들꽃은 누이며,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형제인데 그런 땅을 팔라고 하는 것은 누이와 형제들을 팔아넘기는 일이 아닌가. 이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당신들은 땅을 형제가 아니라 적으로 여겨 정복한다. 어머니인 땅과 맏형인 하늘을 한낱 물건처럼 취급한다. 결국 그 욕심은 땅을 다 먹어 치워 사막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머지않아 백인들이 홍수에 불어난 강물처럼 이 땅을 온통 뒤덮을 것이고 반면 우리 인디언들은 썰물과 같이 아스라한 별을 지켜보듯 소멸하게 될 운명이다. 어떤 종족이든 바다의 파도와 같이 왔다가 가게 마련이다. 그게 자연의 섭리이니 슬퍼할 필요도 없다. 당신들이 쓰러질 날이 지금으로선 아득히 먼 훗날처럼 여길지 모르나 그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이 땅은 신성한 곳이다.

모든 언덕배기와 골짜기, 모든 평원과 덤불숲이 우리에게는 사라져간 날들의 슬프고 기뻤던 사건을 간직하고 있다. 고즈넉한 해안을 따라 입 다물고 있는 바위들조차도. 지금 당신들이 밟고 있는 이 땅은 우리 조상의 뼈로 이루어졌기에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신에게도 땅은 소중한 것이다. 당신들의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땅과 공기와 강물을 우리가 그랬듯이 잘 보살피고 간직하시라."며 연설을 마친다. 땅과 삼라만상이 모두 성스러운 것이다.

자연과 자연의 경이로움을 파괴하는 것은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다. 백인들의 만행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점잖고 품위 있게 꾸짖는 내용이어서 미국 독립200주년 이 돼서야 공개됐다. 제주 아니 우리나라라고 이렇게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은가. 친구도 이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송창우 제주교통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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