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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의 제주마을 백리백경.. 가름 따라, 풍광 따라] (36) 성산읍 신풍리
온화한 선비마을의 풍모 깊이 간직한 마을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입력 : 2023. 03.17. 00:00:00
섬 제주에서 가장 길고 경이로운 냇가는 천미천이다. 한라산 동북사면, 그러니까 산북 교래리 상류 지경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무슨 생각에서인지 우회전 하여 산남으로 방향을 잡아 흘러간다. 그러니 총 길이가 긴 것이다. 마라톤 코스에 육박하는 40.6㎞를 굽이치며 달려와 성산읍 신풍리와 신천리, 표선면 하천리 사이에서 바다와 만난다. 옛 이름으로 이 세 마을을 '내끼'라고 불렀다. 내(川)의 끄트머리 또는 주변이라는 뜻. 옛 비석에 천미리, 천미촌이라고 표기한 것으로 미루어 마을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하천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철종(1840년) 때, 마을의 선비 오진조라는 분이 마을 이름을 신풍리(新豊里)라고 바꿨다고 한다.

천미천이라고 하는 수자원은 냇가와 주변에 많은 소와 못들을 보유하게 하였다. 갈뫼못, 우뢰기물, 득대기물, 가매기못, 곱은소, 몽거니물, 제석물, 도리소, 던데못, 정언이물, 왕지못, 큰개우물 등 정감어린 제주어 지명들로 가득하다. 마을 어르신들이 안타까와 하는 것은 하천정비사업으로 암반굴곡이 있어서 아름답던 하천의 모습을 물 흐름 중심으로 파괴시켜버렸다는 것이다. 경관파괴에서 오는 손실을 후회하고 있는 것.

신풍리는 지금의 본동이라고 하는 웃내끼 지역과 바닷가와 인접한 큰개동 지역을 포함하여 구성된다. 남산봉에서 시작하여 크고 작은 동산들과 모루들을 형성하며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움. 성산읍의 가장 서쪽 마을이라서 읍 소재지인 고성리까지 12km지만 표선까지는 5km다. 역사적으로는 성읍과 인접하여 성장해왔다.

세종 5년 정의현 읍성이 고성리 지경에서 지금의 성읍리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자연스럽게 인접한 '내끼' 지역에 촌락이 번성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이었다. 신풍리 지역의 지명들을 통하여 당시에 어떤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선비장고, [한라일보] 짐비장우연, 선이방 터, 성장터, 소장우연, 고시랑골 등은 대부분 정의현에서 아전벼슬을 하던 사람들의 집터였다는 것. 식자층과 선비정신이라는 가치관을 가지고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신풍(新豊)이라는 이름은 한고조 유방의 아버지 패공의 고향이 풍촌이라고 하는 고사에서 가져다 쓸 정도로 효도를 강조한 마을. 이처럼 마을 이름을 바꾸기 위한 논의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선비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오금철 신풍리장이 밝히는 마을주민들의 가장 큰 특징이요 자긍심은 '선하고, 순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한 정서가 신풍리 발전의 큰 힘으로 작용하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마을에 귀농하여 살고 있는 젊은 부부들이 청년회나 부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니 모범적 사례라고 아니할 수 없다. 토박이라고 할 수 있는 마을 주민들이 먼저 정감어린 손을 내밀어 마음을 열고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발견하고는 단순한 귀농이 아니라 신풍리 사람으로 인생을 사는 모습. 같은 행정구역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같은 환경을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을 사람들의 정을 호흡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공적 귀농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제주의 마을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요 귀감이다.

독특한 경관이 있다. 바닷가와 바로 인접한 신풍목장이다. 지금은 개인 소유지만 마을공동체가 집념을 가지고 기금을 모아 마을 땅으로 만들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곳. 일주도로와 바닷가 사이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을 바라보는 것은 참으로 이색적인 경험이다. '섬과 말'이라고 하는 테마가 여과 없이 드러나는 감각적인 장소다.

중산간 도로에서 신풍리까지 연결된 남산봉로를 걸으면서 봄날의 숨결을 느꼈다. 몇 해 전보다 더 자란 나무들 그대로 지켜지면 결국은 숲 터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름다운 농로가 가장 큰 정주여건이요 마을의 자원이 되는 마을. 그 길들이 밝은 미래를 향하여 뻗어가고 있다. 사람의 발자국으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길이 먼저 달려가는 미래. 낮에 밭을 갈고 밤에는 글을 읽던 선비마을이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온화한 덕(德) 가득 품어 생명력 넘치는 마을. 진정한 힘이 느껴진다. <시각예술가>



나무와 집들이 공존하는 마을길
<수채화 79㎝×35㎝>


유서 깊은 마을의 역사를 연륜이 오래된 나무로 상징하였다. 오래되었다고 해서 결코 낡은 색이 아니라 짙은 초록으로 살아있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그 자체다. 오전의 생동하는 햇살을 받고 있는 마을 안길과 집들의 눈부신 자태를 그리기 위해 면적대비에서 오는 밝은 느낌을 얻으려 하였다. 파격적인 구도다. 식상한 원근법을 동양화의 주대종소법으로 파괴하려 든 것이다. 하여, 발생한 것이 시간성이다. 조상들의 음덕이 화면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도록 한 것은 저 나뭇잎사귀 숫자만큼의 세월과 세월들이 이룩한 현재의 모습임을 그려야 하겠기에. 공간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나무가 차지하는 면적과 비중이 생성시킨 놀라운 현실이다. 아스팔트마저도 눈부신 햇살에 정겨움을 더하게 되는 것은 소박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농촌마을 주택들이 있어서일 것이다.

흰색 차선이 곡선 흐름을 보면 오묘하게 휘어지고 높낮이를 달리하는 공간적 느낌을 표현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근경에 해당하는 슬레이트지붕에서 지금도 계속되는 추억의 빛을 되새김한다. 명암의 차이보다 배경색에 의하여 존재감이 솟아나는 판화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동양화의 깊은 정한을 느끼게 하는 배치미학의 요소를 엉뚱하리만치 과격한 방법으로 새로운 공간적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짙고 옅은 것은 명암의 문제가 아닌 원근의 문제로 치환되는 경우를 느끼게 하도록 생략적 과장을 시도한 것이다. 현실을 그리면서 과거와 미래를 유추하고 싶은 욕구에서 그렸다.



3월 초순, 봄의 공기와 햇살
<수채화 79㎝×35㎝>


남산봉에서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천미천 인근을 따라가게 된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딛고 가다가 여기에서 멈추게 된 것은 너무도 아름다운 평화를 느껴서이다. 길 오른쪽은 아직도 겨울의 끝자락을 이야기하고, 왼쪽은 유채꽃 그 노랑색이 봄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소나무들이 자라난 모습이 참으로 정겹다. 담채화에서 조금 짙은 느낌을 주는 회화적 선택에 의하여 온화한 대기 속에 있음을 표현하려 하였다. 특별하거나 자극적인 것이 없는 너무도 평이한 구도 속에서 잔잔한 아늑함을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충동에서 화폭을 채워나갔다. 살짝 오르막이 형성된 길 너머에 짙은 상록수 군락이 허리 정도에서 잘려져 경사도를 가늠하게 하는 놀라운 공간적 배려를 보여준다.

자연(自然)은 말 뜻 그대로, 스스로 그렇게 되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겨울과 봄 사이라고 하는 시간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이러한 곳에서 그리게 된다면 표현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여 시도하였다. 과도하지 않은 중용적 안락함. 평이한 풍경이 줄 수 있는 색다른 선물이기도 하다. 자극적인 조미료를 쓰지 않고 재료가 지닌 본래의 맛을 살리는 것이 힘든 작업이라는 이치와 흡사한 제작 과정이다. 무미건조한 듯 힘을 뺀 동작을 보여주는 무용수처럼 봄의 나른함을 형상화 하였다. 아직은 추위가 다 가시지 않은 그런 날에 찬란하게 피어난 유채꽃밭을 그리며 봄의 전령사라도 된 냥, 즐거워하였다. 봄은 누구나에게 온다, 겨울을 이겨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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