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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희의 백록담] 옛 탐라대 '희망 고문' 이번엔 끝낼 때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3. 09.11. 00:00:00
한자로 새긴 다섯 글자의 큼지막한 교명 현판이 간신히 과거를 말해주고 있었다. 어느 시절 청춘들이 수없이 드나들었던 곳이지만 지금은 '출입 통제 안내문'이 방문객을 가로막는다. 거기엔 '제주도 소유의 건물이어서 허가 없이 출입하는 경우에는 관계 법령에 따라 처벌을 받는다'는 문구가 적혔다. 서귀포시 하원동 탐라대학교. 교육부에서 2010년 1월 부실대학으로 지정했고 이듬해 제주산업정보대와 통폐합해 제주국제대로 새롭게 출발하면서 사라진 그 학교다.

탐라대는 단순히 서귀포에 있었던 대학을 넘어 하원마을회에서 싼값에 사들인 마을 공동목장 부지로 기반이 만들어졌다. 해방 후 제주 곳곳에 초등학교가 설립될 때 마을 공동체에서 온 힘을 모았던 것처럼 하원동 주민들도 대학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그런 마음을 보탰다. 실제 탐라대학교란 교명으로 개교한 다음 해인 1999년에 발간된 하원동마을회의 '하원향토지'엔 "9만4000평의 공동목장을 매각"한 자리에 생긴 탐라대의 일반 현황에서 대학 발전 계획까지 10쪽에 걸쳐 다뤘다. 거기다 '마을의 발전사' 부분에 '탐라대학교 진입로 확장'을 포함시켜 "서귀포시 도시 발전에서 소외되어 오던 하원동의 균형 발전에도 의의"가 있고 "1차 산업 외 전무한 지역에 대학이란 환경친화 산업"이 운영된다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그랬던 학교가 문을 닫자 마을은 물론 제주 사회에서 대학 부지를 활용해 무엇이든,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수년간 희망의 말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실체는 잡히지 않았다. 2016년 약 416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한 제주도에서도 외국 대학 유치 등에 나섰지만 성과가 없었다.

이번에는 달라질까. 지난 1월 제주도가 옛 탐라대 부지 기본 구상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당시 탐라대를 찾아 마을 주민들 앞에서 기본 구상을 공개한 오영훈 제주도지사는 그간 부지 활용에 대해 뚜렷한 복안을 내놓지 못했다며 "도정을 대표해 매우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힌 뒤 "견실한 기업 유치와 혁신 공간 조성이라는 명확한 방향과 목표를 설정하고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을 약속"한다고 했다.

그 약속은 근래 학교 용도를 폐지해 부지 활용 폭을 넓히고 우주산업 기업 입주 등 가칭 '하원테크노캠퍼스' 조성 계획으로 이어졌다. 10억 원을 투입하는 하원테크노캠퍼스 지구단위계획 용역이 이뤄지면 그에 대한 큰 그림이 그려질 전망이다.

마을회 측은 제주도에서 탐라대 부지 전담팀을 구성하는 등 이전과는 진전된 모습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마을에서는 지난 6월 지역주민이 주축이 되고 하원동 출신 인사가 함께하는 '탐라대 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지난달 도지사 면담에서는 부지 활용 시 마을과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건의했다.

이번에는 달라져야 한다. 대학에서 기업 유치로 탐라대 부지 활용 방향이 이동한 셈인데 소리만 요란해서는 안 된다. 국가 핵심 산업, 신성장 동력, 새로운 미래 먹거리 등 제주도에서 기본 구상과 연관 지어 꺼냈던 문구들이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진선희 제2사회부국장 겸 서귀포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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