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이젠 놀라지도 않는다. 날이 갈수록 책을 읽지 않는 한국의 현실에서다. 문화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국민 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단 한 권의 종이책도 읽지 않았다. 이런 통계는 1994년 첫 조사 당시 독서율(86.8%)은 물론 5년 전보다도 5% 떨어진 역대 최저치(59.9%)다. 사람들의 눈과 시간을 빼앗는 것들이 온통 범람하는 일상에서 책 읽는 인구가 줄어드는 '활자 이탈' 현상이 도드라지고 있다. 독서 선진국이라는 독일이나 일본에서도 '독서의 해'를 정해서 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단위로 '독서의 해'를 개최해오고 있는 터다. 우리나라는 책 읽기에 관한한 일찍이 역사적 최고(最古)급 국가였다. 그 대표적 사례로 조선시대 세종이 실시한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들 수 있다. 이 제도는 인재를 기르고 문풍(文風)을 떨쳐 일으킬 목적으로 생겼다. 양반관료 지식인 가운데에서 총명하고 젊은 문신들을 뽑아 적당한 여가시간을 주고, 국비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했다. 이것은 뒷날에 크게 쓸 나라의 동량(棟樑)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세종의 현명함이 새삼 묻어난다. 책은 사람을 키운다. 핍박한 정신을 살찌운다. "하루에 단 한번이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서 가시가 돋는다"고 안중근 의사는 일찍이 책의 열정을 설파한 바 있다. 어느 독서 애호가는 "나에게 책은 존재방식과 삶의 양식이 됐다. 누군가의 경험과 일생을 송두리째 담은 책은 성찰과 통찰을 하게 하는 눈이 있다. 그 눈으로 세상을 향해 걸어가고 인간으로 태어난 기쁨을 충만하게 한다"고 했다. 독서인구 감소와 디지털 정보시대를 맞아 서점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해 사라져가는 모습을 보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서점들이 사라진 그곳에는 의류점이나 치킨집과 같은 음식점, 유흥업소들이 성업하고 있다. 책을 보다 가까이 시민들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현실도 독서인구를 움츠려들게 한다.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청이 만들어 운영하는 공공도서관에도 문제가 많다. 우리나라의 공공도서관 숫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2개 국가 중 최하위권이다. 공공도서관 수, 자료구입비, 사서직이나 전산직 등 전문인력 확보 수준이 모두 그렇다. 인구 10만 명당 공공도서관 수는 런던이 4.7개, 파리 3.5개, 뉴욕 2.6개, 도쿄가 2.5개인 데 비해 서울은 1.3개로 열악하다. 제주는 서울보다 한참 열악하다. 이 모두가 독서와 관련된 예산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책과 도서관에 실컷 돈을 쓴다고 해도 그렇게 많은 예산이 들어가는 건 아니다. 예산배정 우선순위를 맨 뒤에서 앞쪽 부분으로 당겨 달라는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국회의원들이 '문화'를 부각시키며 도서관과 독서환경에 신경 쓰는 것처럼 '폼 잡는' 소리만이라도 하지 말았으면 싶다. <임창준 수필가·전 제주도기자협회장>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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