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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연의 문화광장] 뒤섞인 모듈과 함께 플립턴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7.29. 22:00:00
[한라일보] <플립턴>이라는 제목으로 엮인 양화선의 신작은 의외다. 고유하게 불투명한 파스텔톤의 푸른 색조는 여전하다. 식물과 수영장같은 소재도 고스란히 유지된다. 그런데 뜻밖에도 전혀 달라 보이는 생경함이 신작에는 있다. 이 생경함이 어디서 오는가 들여다보니, 그간 작가가 철저하게 통제하던 구도를 흩트린 데 있었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그간 작품에 등장하던 모든 요소를 상상 속 하늘에 띄워 화면에 떨어지는 대로 자유롭게 그려보았다고 한다. 그 발상이 초현실주의자들이 쓰던 자동기술법처럼 들렸다. 기하학적인 도형들이 늘어난 이성적인 추상화처럼 보이는 이 그림에선 초현실주의자들의 실험에서처럼 작가의 어떤 무의식이 드러나게 되는건지 궁금해졌다.

작가의 작업실에서 드로잉수첩을 봤다. 이전 작품에서 나온 파편같은 도형의 형상들을 한 장 한 장 문자처럼 그려넣은 것이었다. 일종의 알파벳처럼 하나하나의 도형은 화면에 떨어져 내려 단어나 어절이 되어 어떤 의미를 생성해 전달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 언어적 의미도 전달하지 않은 채 우연의 효과에 기대어 언어같은 외형으로 가지고 노는 어떤 것이 탄생했다. 이 역시 어른과 이성의 상징인 언어 체계를 붕괴시킴으로서 기성의 체제를 파괴하고 전복하려던 뒤샹이 잘 가지고 놀던 언어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어로 어구전철(語句轉綴), 영어로 애너그램(anagram)이라 불리는 이 뒤샹식 체제전복 놀이는 단어나 절을 구성하는 문자의 순서만 바꾸어 재배열함으로써 전혀 다른 단어나 문장으로 바꾼다. 멀쩡한 문장, 탄탄해 보이는 의미를 의도적으로 해체시키고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어떤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 양화선의 신작은 무의식의 시각언어 놀이가 된다.

말레비치의 형상 실험과 칸딘스키의 색상 실험을 섞어놓은 것처럼, 양화선은 각각의 형상, 즉 모듈에 색상도 지정했다. 1930년경에 작성된 "회화에서 색상과 형태의 관계를 결정하기 위한 시도"라는 제목의 에세이에서 말레비치는 동료들과 함께 몇몇 예술가들의 마음속에서 형태가 색상 연상을 일으키거나 그 반대의 방식을 조사하는 방법에 대해 묘사했다. 이를 위해 각 예술가에게 간소화된 기하학적 그림을 보여줬고, 이는 그 형상을 통해 색상을 연상시킬 목적이었다. 이 실험은 대략 동일한 색상 연상을 제공했다. 모든 형태가 비교적 특징적이고 보충적이지 않은 색상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이었다.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는 원, 삼각형, 십자형 등을 조합한 단순한 화면이지만, 상징도 의미도 없이 내면의 질서에 따라서 형성되고 구성된, 자연을 초월한 순수한 감각을 그린다. 자연의 모방이 아닌 내면에서 생성된 조형언어를 순수로 여긴다. 수영장이라는 오리진이 될만한 형상을 지속적으로 의식하고 있지만, 사실 결과적으로는 모든 작업방식과 결과물이 내면에서부터 나온 레퍼런스가 없는 조형언어를 지향하고 있다.

수영장을 그리며 그림 안에서 안전지대를 찾던 양화선의 작품은 플립턴해서 기하학적 추상화면으로 변신한다. 작가는 잦은 이주를 통해 마음을 두는 안전한 곳은 결국 공간 자체가 아니라 반복적인 루틴, 자신만의 호흡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캔버스 위에 쌓아 올리는 여러 번의 붓질이 작가를 안전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나연 전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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