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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92] 3부 오름-(51)성널오름이란 샘과 얕은 물이 있는 오름
널판으로 쌓은 성? 우스꽝스러운 성판악 지명 유래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7.30. 01:30:00
1만명에게 식수를 공급하고도 남는 성널오름 샘물


[한라일보] 한라산 제1횡단도로의 남사면과 북사면의 분수령을 흔히 성판악이라 한다. 이곳의 버스정류장도 성판악정류장,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탐방로도 성판악탐방로라 한다. 이 탐방로를 관리하는 사무소도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성판악지소라 한다. 교통로로 볼 때나 탐방로로 볼 때나 이 노선에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지명이다. 성판악이란 여기서 정상 방향으로 보이는 오름이다. 표고 1215.2m, 비고 165m, 둘레 3.4㎞로 대형의 오름이다. 오름의 중간 정도에 병풍처럼 수직으로 늘어선 암벽이 있다.

성널오름 폭포, 성널오름샘에서 거리로 800m 하류에 높이 약 12m 수직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로 물맞이 장소로 이용됐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이 오름의 동사면에서 발원한 하천이 서중천이다. 이 내의 최고 발원지는 해발 1280m 흙붉은오름 일대다. 그 지류 중 일부가 성널오름에서도 발원한다. 유로 연장 22.43㎞. 남원읍 하례리와 신례리 경계를 가로지르는 내가 신례천이다. 최고 발원지는 해발 1750m의 진달래밭 일대다. 성판악의 남서사면도 그중 하나다. 이 하천은 논고악의 서사면 일부와 보리오름 서측을 지나 수악교를 통과한다. 유로 연장은 17.35㎞. 이 하천들은 발원지를 포함해 곳곳에서 용출한다.

서귀포는 국내에서 가장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평년 강수량이 1989.6㎜에 달한다. 그런데 성판악은 서귀포시에 비해서도 2배를 넘는 4381㎜에 달한다. 곳곳에 물이 고이는 소와 웅덩이들이 형성되었고 샘도 있다. 이 샘은 성널샘으로 부른다. 신례천 상류 해발 980m에 있다. 5.16도로 제2논고교에서 약 4㎞ 거리다. 제주지하수연구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용출량은 하루 최소 691㎥다. 이 용천수를 남원, 표선, 성산 일부 지역 9130명에게 1일 550㎥를 급수하였다. 여기서 800m 하류에 높이 약 12m 수직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물맞이 장소로 이용했다.





널판으로 성을 쌓고, 성에 널을 세워 놓다니...


이 성판악의 샘을 이용한 수원개발사업은 1965년에 시작했다. 서귀포의 현대식 상수원으로는 1959년 착공한 하원수원지 다음으로 빨랐다. 어승생수원지보다도 2년 빠른 것이다. 이는 성널샘에서 용출하는 물이 얼마나 많고 안정적이었는지를 말해주는 것이다.

성널오름 중턱의 용암 절벽, 이 오름의 지형 특징이기도 하다. 김찬수

이 오름 지명 성판악은 과연 무슨 뜻인가? 이 말은 성널오름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만들어진 지명이다. 산 중턱에 암벽이 널 모양으로 둘러 있는 것이 마치 성벽처럼 보이는 데서 성널오름이라 하고 한자로는 城板岳(성판악)으로 표기한다라고 한다. 또는 성에 널을 세워 놓은 것과 같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사실 이런 설명은 1611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城板嶽。在縣西五十里。石壁如城板(성판악. 재현서 50리, 석벽여성판)에서 유래한다. 이 석벽여성판(石壁如城板)을 '석벽이 성 쌓는 널판 같다'라 번역하거나 '성에 널을 세워 놓은 것과 같다'라고 번역한다. 널판으로 성을 쌓고, 성에 널을 세워 놓다니… 우스꽝스러운 해석들이다. 첫 기록,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들 모두 괴이쩍다.

城板嶽(성판악)이라고 표기한 고전은 이외에도 여럿 있다. 한편 1702년 '탐라순력도'등 일부 고전에는 成板岳(성판악)으로 기록되어 있어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에 대하여 어떤 이는 城(성)은 음독자 표기, 成(성)은 음가자 표기라 하면서 板(판)은 '널'의 훈독자 표기라 했다. 이 이야기의 뜻은 '성'이라는 음은 이 경우 어떻게 썼든 간에 성(城)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널은 말 그대로 널을 지시한다고 봤다.



세상 모두가 그렇다 해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해야


이런 설명은 이제 완벽하게 우리의 뇌 속에 들어와 있어서 이 지명의 유래를 의심하는 것은 오히려 불경해 보이기조차 하다. 그러나 세상 모두가 믿는다는 것이 곧 진리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 '성'은 한자어를 쓰고 '널'은 순우리말을 썼느냐 하는 것이 의문이다. 성은 흙이나 돌로 쌓는 것이지 판자로 쌓지는 않는다. 널을 성벽에 걸쳐 놓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널을 성널이라고 한다는 기록도 없다. 그러므로 암벽이 성벽처럼 보인다면 성벽오름(城壁-)이라던지 석벽오름(石壁-)이라면 모를까 성널오름이라고 불렀다는 건 아주 이상한 설명이 된다.

원래 '성'을 나타내는 순우리말은 자 혹은 잣을 썼어야 맞는 것이다. 1459년 '월인석보', 1447년 '석보상절' 등에는 성(城)을 '잣'으로 썼다. 1527년 '훈몽자회', 1576년 '신증유합'에도 '잣 성(城)'이라 했다. 1587년 '소학언해(선조판)'에는 '자'로 나온다. 이런 출전으로 볼 때 성(城)의 순우리말이 자 혹은 잣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1447년 '용비어천가'에는 '셩'으로 표기하여 '셩 셩(城)'으로 사용하기도 했으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한자음을 받아들인 결과일 뿐이다.

따라서 제주도 고대인들은 성널오름이라 부를 때 '성'은 또 다른 의미의 순우리말로서 썼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구심 때문에 옛 선인들도 城(성)을 쓸까 成(성)을 쓸까 하고 헛갈렸을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해소해 줄 수 있는 지명이 바로 앞 회에서 설명한 '성불오름'이다. 여기서 '성'은 샘을 지시하는 한자 이전의 순우리말이다. 이 부분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그렇다면 '널'은? 우리 고대어로 얕은 물이 있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다. 자세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룬다. 고대인들은 성벽처럼 보이는 용암 절벽보다 이곳에서 솟아나는 샘에 더 주목했다. 성널오름이란 샘과 얕은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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