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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빠지다
“동네 미용실 같은 민화 화실 꿈꿔요” [제주愛]
[2024 제주愛 빠지다] (8)‘제주그림’ 대표 오은희 작가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입력 : 2024. 08.14. 01:00:00

서귀포시 신효마을에서 민화 화실을 운영하는 오은희 작가가 제주 생활에서 그린 '일월한라도'를 배경으로 서 있다. 진선희기자

수눌음 공동육아 등 인연 맺으며 낯선 환경 적응
"나는 굴러온 돌"… 이 땅을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한라일보] 스무 살에 처음 나 홀로 여행을 했던 곳이 제주였다. 2주가량 머물며 쌓은 기억들은 10여 년 뒤 다시 그를 제주로 이끌었다. 남편은 자신의 경력을 활용해 제주에서 새 일자리를 얻었고 그도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이력을 살려 민화 화실을 열었다. "언젠가 제주에서 살겠다"고 말해 왔는데 그것이 현실이 됐다. 서귀포시 신효마을에서 '제주그림'을 운영하는 오은희 작가다.

"월드컵이 끝난 2003년이었어요. 친구들과 제주 여행을 하자고 했는데 혼자만 오게 됐죠. 대학 후배가 제주에 있어서 공항 도착 후 전화를 걸어 '어디로 가면 좋을까' 물었더니 600번 버스를 타라고 하더군요. 그길로 중문에 간 게 제주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지금처럼 제주올레길도 생기지 않았고 게스트하우스도 보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가 짐을 푼 데는 하루에 1만5000원을 받던 숙박업소였다. 버스 기사에게 싼 숙소를 추천해 달랬더니 천지연폭포 가는 길에 자리했던 그곳을 알려줬다. 시설은 허름했지만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 전망에 아침에는 김, 미역국, 계란 등이 나왔다. 그렇게 먹고 힘을 내서 곳곳을 돌아봤다. 한라산에 오를 땐 신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우연히 알게 된 일행들에게 태권도화를 빌려 신고 백록담까지 갔었다.

조금은 불편했지만 혼자 헤쳐갔던 여행의 경험은 제주에서 훗날을 그릴 자산이 되었다. 2017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제주에 둥지를 틀기까지 큰 고민이 없었던 이유다.

제주에 와서 3개월간은 서귀포시 남원읍의 어느 마을에 살았다. 남편이 주변에 알아보며 구한 집이었다. 신효마을로 이사할 때에는 '분양'이란 두 글자를 보고 들어간 건물에서 전세로 살 곳을 찾았다.

제주에서 나이 마흔을 넘긴 오 작가는 이곳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내온 덕에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제주그림', '수눌음돌봄공동체' 등이 그 통로가 되었다.

'제주그림'은 동네 미용실처럼 누구든 마음을 단장하고 싶은 날 편히 들를 수 있는 화실을 꿈꾸며 마을의 한 건물 1층을 빌려 꾸리고 있다. 지난 5월 귤림공방과 신효마을회가 손을 잡고 열흘간 '신효마을 공예축제'가 펼쳐지는 동안에는 '제주그림'도 주요 행사장으로 변신해 '일상이 민화'란 주제 아래 지역 주민에서 '한달살이' 체류객까지 매일 30명을 대상으로 유리컵에 그림 그리기 체험 등을 이어갔다. 지난해엔 '제주그림'을 거쳐간 수강생 등으로 '서귀로운 민화 연구회'를 결성했다.

'수눌음돌봄공동체'를 통해선 제주 정착 후 첫 인연이 맺어졌다. 공동육아를 하는 엄마들과 알고 지낸 지 5년쯤 되는데 함께 사는 즐거움을 배우고 느끼게 하는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했다.

'제주그림' 공간 한편에 예비 사회적기업 사무실을 차려 동자석 등 제주 문화유산을 소재로 문화 상품을 생산해 판매한 적도 있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면서 지정을 반납했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그린 그만의 꽃잔 등은 개인 작업으로 제작돼 팔리고 있다.

올해로 2년째 제주돌문화공원 전통 초가 예술인마을 입주 작가로 선정된 그는 '일월한라도', '제주문자도-산' 등 이 섬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 왔다. 2019년부터는 제주4·3미술제에 출품했다. 무고한 이들이 속절없이 스러진 4·3의 사연을 접하고 눈물을 쏟았다는 그다.

"제주에서 쓰임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오 작가는 '나는 굴러온 돌'이란 생각으로 제주를 만났다고 했다. 거기에 다른 뜻은 없다. 이 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다. "시골에서 잘 사는 게 목표"라는 그가 제주로 향하려는 이들에게 조심스레 건넨 조언이다.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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