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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희의 하루를 시작하며] 수직에서 수평으로, 경계에서 너머로
송문혁 기자 smhg1218@ihalla.com
입력 : 2024. 09.25. 01:00:00
[한라일보]  민족의 대명절 한가위에는 매년 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절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유난히 폭염에 시달린 올해는 추석이 지났음에도 아직 여름의 연장선에 있다. 체질과 환경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나는 제주에 이주한 후에도, 날씨나 온도, 습도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여름은 기록적인 폭염이 끼친 크고 사소한 일들로 인해 간과해 왔던 많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피부로 와닿았다.

 지난 칼럼에서도 '인류세'를 언급했지만, 이 주제는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나 연구, 전시에서도 여러 차례 소환된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 지질이나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 주목하여 제안된 지질 시대 구분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대기 화학자인 파울 크뤼천이 2000년에 언급한 지질학적 용어로, 현재는 전 지구적으로 주목받는 담론이다. 오랜 시간 거의 모든 학계에서 뜨거운 논쟁의 중심이 되고 있는 인류세 개념은 단순히 지질 시대를 구분하고 환경 훼손에 따른 생태 위기를 다루는 개념을 넘어, 인류의 존재와 미래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이 되어가고 있다.

 지난 9월 7일에 열린 제15회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개인 거주지부터 행성 지구까지 모두가 공유하는 '관계적 공간' 안에서 인간, 기계, 동물, 영혼, 유기 생명체 등 생동하는 모든 존재들의 '울림'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예술감독인 니콜라 부리오는 전시 연계 프로그램인 '새로운 울림: 인류세 시대의 예술과 기술'이라는 심포지엄에서 "이제 인류는 배경이 되는 공간 앞이 아닌 공간과 몰입하는 환경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예술도 자연과 문화와 하나가 되는 쪽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오는 26일 개최할 강원국제트리엔날레2024의 전시 주제는 '아래로부터의 생태예술: 강원, 개미굴로부터 배우다'이다. 온난화 시대에 '지구의 환풍구'라 불리는 '개미굴'로부터 영감을 얻어 대안적이고 미시적인 사고와 태도를 확립하고 실현하기 위한 예술적 모색임을 강조했다.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지역과 세계의 관계성을 재정립하기 위한 '태도'로서의 예술 실천의 의미를 담고 있다.

 미술계에서도 화두인 인류세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과 연결되어 정형화된 세상의 진리를 뒤집어 보도록 권유한다. 다시 말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구분한 서구 중심의 사고관에서 벗어나 범우주론적 시공간 내에서 지구의 역사를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는 다차원적 사유와 태도를 제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과거의 시간 속에서 현재를 발견하고, 현재의 모습을 통해 미래를 예측하며, 미래의 시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살펴 자신의 좌표를 모색할 수 있다. 지질학, 생물학,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세를 언급하는 것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정치적으로 바라보았던 시각에서 벗어나 수직적인 관계에서 수평적인 관계로, 경계를 허물어 그 너머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은 실천의 결과는 다시, 날씨처럼 우리의 피부로 돌아와 체감될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권주희 스튜디오126 대표·독립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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