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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웅의 한라시론] 제주의 대표 우장(牛場) 신천리 목장이 사라진다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17. 00:30:00
[한라일보] 아침 해가 저 멀리 바다 위로 솟아오를 즈음 바다에서부터 너른 초지까지 온통 붉게 물든 풍광이 펼쳐지는 곳이 있다. 겨울철 귤껍질을 말리는 풍경이 예뻐서 관광객들에게도 많이 알려진 제주 동쪽에 자리 잡은 신천리 목장이 그곳이다. 마을 소유의 목장이었지만 지금은 사유지 목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신천리 목장 경계로 북쪽 구역은 신풍목장이 있다.

이곳 목장의 역사는 길다. 기록에 따르면 조선 정조 때 국영목장으로서 별도의 관리자를 두어 소를 키웠고, 조정에 진상할 말들이 육지로 가기 전에 머물기도 했다. 1776년에 제작된 제주삼현도에는 천미장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목장 내 동굴이 있음을 표기해 놓기도 했다. 그리고 1872년 제주삼읍지도에는 우장(牛場)으로 표기가 된다. 소를 기르는 목장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조정의 농업 장려 정책으로 농사일에 쓰는 소인 농우를 늘리려 한 정황도 파악할 수 있다. 신천리 목장은 이후 일제 식민지를 거치며 마을 공동목장으로 전환됐다. 기록으로 보더라도 대략 300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갖는 제주의 목장이다.

과거 기록에도 있듯이 신천리 목장을 가로지르는 용암동굴인 마장굴의 분포도 색다르다. 제주도 내 많은 용암동굴 중에 유일하게 해안가로 입구가 형성된 천연동굴이다. 지난해 제주도 세계자연유산본부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마장굴은 일주도로에서 시작해서 목장을 관통해 해안까지의 총연장이 600m에 달한다. 결과 보고서는 마장굴에 대해 "동굴의 바닥은 양배추 꽃 모양의 아아용암과 부분적으로 새끼줄용암이 발달하며, 용암유선과 용암내각 구조가 잘 발달"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곳 목장에 개발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신천리 목장의 경우 휴양콘도와 휴양문화시설을 중심으로 개발계획을 세우고 전략환경영향평가 절차를 밟고 있다. 바로 옆 신풍목장은 온천개발을 한다는 얘기가 들린다.

이러한 개발로 주민의 삶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마을주민이 요청한 신천리 목장 개발사업 공청회에 다녀왔다. 신천리 목장이 개발되면 개인하수처리시설에서 하루 300여 t의 방류된 물이 마을 어장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 상수도 공급 과정에서 마을 상수도관의 수압 문제, 동굴 훼손 문제 등도 거론됐다.

제주의 향토문화와 역사가 오롯이 남아있고, 조상 대대로 마을목장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개발로 모든 흔적을 지우고 풍광 좋은 사유지 관광지로 변모해 가고 있다. 이처럼 알게 모르게 제주의 목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그리고 마을의 공동체도, 제주의 문화도 함께 사라져 간다. 용암동굴이 훼손 위험에 처하고, 마을어장의 피해가 눈에 선하다.

아직 계획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재 제주도의 개발정책을 고려하면 제주의 환경과 문화역사가 살아있는 이곳이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 앞선다. 지속가능한 농촌공동체를 위해서도 제주도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본다.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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