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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1)사려니숲 봉개주차장~숲길~민오름~습지~삼다수농장~교래곶자왈~큰지그리오름~족은지그리오름~바농오름 -남조로
가을 중턱에 오름 넘어 드넓은 초원과 곶자왈 누비다
오름 정상에서 펼쳐진 풍광 만끽
숨은 습지 소중한 가치 일깨워줘
4·3때 상흔 간직 교래곶자왈도 지나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25. 03:00:00

가을 중턱에 들어선 지난 5일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1차 행사가 진행됐다. 이날 참가자들이 사려니숲 주차장에서 출발해 민오름 정상과 습지를 거쳐 목장길을 걸어가고 있다. 오승국 시인

[한라일보] 지나간 한 해와 마무리할 일들을 생각하는 사색의 계절, 가을의 중심시간이 흘러가는 시월이다. 분명 시월의 시간은 흐르고 있고, 숲은 11월의 아름다운 단풍을 예고한 채 여전히 진초록으로 버티고 있다. 숲의 나무들은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들만의 일생의 루틴을 정직하게 수행한다. 작별을 예감하며 떨어지는 잎새가 애잔하다. 우리들의 삶도 결국은 죽음의 과정인 것처럼 신록의 옷을 벗고 가볍게 버티고 설 숲의 겨울은 늘 장엄하다.

지난 5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1차 행사는 시월의 가을을 마음속에 품으며 4곳의 오름과 둘레길, 곶자왈, 목장길, 숲길 등 11㎞을 걸었다. 특히 오늘 트레킹은 봉개동에서 교래리로 이어지며 교래곶자왈을 생성시킨 봉개 민오름, 큰지그리, 족은지그리, 바농오름 등 4곳의 오름을 등정했다. 연달아 이어지는 오름이라 힘들게 느껴지진 않았으나 그 성취감은 오랫동안 기억속에 남을 것 같다. 대나오름(절물)과 함께 5개의 오름이 이어져 있어 요즘엔 '지그리 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목마장 구분으로 2소장과 산마장의 중심지이기도 했으며 제주시 봉개동과 교래리 지역에 펼쳐져 있다.

간단한 준비체조를 마치고 민오름을 향해 숲으로 들어섰다. 서어, 졸참, 산딸, 때죽, 단풍, 쥐똥나무 등 상록낙엽수가 즐비하고, 머금었던 씨앗과 잎새가 머리위로 떨어진다. 힘들게 오름 등성이를 오르다 보니 휘파람새의 독특한 소리가 우리의 걸음을 응원한다. 여린 억새가 너울너울 춤추는 민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푸르른 목장과 제주동부의 오름들은 여전히 목가적 여유로움으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까마귀베개

한라돌쩌귀

땅콩버섯

오름 3부능선쯤에 민오름 습지가 숨어 있다. 제주에는 람사르협약에서 인증된 물영아리, 1100도로, 선흘곶, 숨은물뱅듸 습지등 340여 개의 습지가 분포해 야생생물에 대한 정보는 물론 생물종 다양성, 수질정화, 기후조절, 물 공급 및 지하수함양 등 습지의 소중한 가치를 일깨우고 있다.

민오름 둘레길을 걷다보니 삼다수목장이 광활한 가을하늘 아래 푸르게 푸르게 우리를 부른다. 길가에는 물봉선, 짚신나물, 엉겅퀴, 참취, 파대가리 등 야생화가 소담하게 피어 있다. 이 지역은 애초부터 오래된 목장 지대다. '도리송당'이란 말은 최고 고지의 마을인 교래리와 송당리를 일컫는다. 토질이 척박해 농사가 안 되므로 목축에 전념할 수 밖에 없었던 어려웠던 시절에 나온 말이다. 오죽했으면 어린애들이 울음을 그치지 않으면 교래(도리)나 송당에 보낸다고 했을까.

말똥버섯

개승마

교래곶자왈로 들어섰다. 시월 곶자왈의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기다리며 묵언 중이다. 4·3 당시 교래곶자왈은 죽음의 숲이었다. 적막고요하다. 1948년 11월 13일, 불시에 들이닥친 군인 토벌대가 교래리 마을을 불태우고, 잠자던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교래곶자왈 늪서리곶에서 피신생활을 하다 주민 10여 명이 사냥 당하듯 토벌대에 의해 총살됐다.

산초

진득찰

큰지그리오름으로 향한다. 독특한 이름인 지그리의 지명유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교래자연휴양림 코스 안에 있어서인지 등산로와 편의시설 등이 잘 갖춰져 있고,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이 간벌돼 편안하게 느껴졌다. 피톤치드의 향기와 함께 편백 숲에서 행복한 도시락 오찬을 했다. 오랜만에 좋은 날씨와 함께한 도시락 공동체였다. 늘 편안하게 길을 인도하는 박태석 님이 건네준 담근주 한잔이 4·3의 피어린 기억을 위로해줬다.

오승국 시인

다시 걷는다. 이묘해간 터에서 100년쯤 되는 배롱나무가 주인을 잃은 채 기묘한 모습으로 자라고 있다. 죽은자의 영혼이 살아있는 듯 묘한 기분이다. 점심 후의 등정길은 힘들었으나 큰지그리오름 정상에서 바라보는 사면의 풍광은 또 다른 모습으로 아름다웠다.

족은지그리오름까지 찍고 바농오름으로 향한다. 바농은 바늘의 제주어다. 두릅, 상동, 청미래 등 가시나무가 많았나 보다. 삼나무숲을 치고 올라 정상에 서니 가막살 빨간 열매가 지천에 널려 있다. 바농오름 서쪽 기슭에는 4·3 당시 조천지역 주민들이 피신해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있다.

다시 만난 친구여, 우리가 걸었던 대지에서 사라져간 고운 사람들을 위해 다시한번 진혼곡을 불러주오. 그리고 여름날의 피로를 위로해 준 시월의 바람을 위해 건배.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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