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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의 월요논단] 2024 제15회 광주비엔날레 소견
오소범 기자 sobom@ihalla.com
입력 : 2024. 10.28. 01:30:00
[한라일보] 비엔날레 행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전에 없이 시들해지면서 국내 메이저급 비엔날레들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국내 비엔날레의 맏형으로 불리며 30년 동안 비엔날레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광주비엔날레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무거운 책무를 걸머지고 있다.

지난 9월 6일 개막한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 아래 86일간의 대장정을 치르고 있다. '관계의 미학'이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프랑스 미술이론가 니콜라 부리오가 내놓은 원제명이 'PANSORI-A Soundscape of The 21st Century'이고 보면 한글 번역은 맥이 빠져 아쉽다. 부리오가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내놓은 핵심어인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즉 공간으로서 '음풍경'의 뜻이 실종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전시 공간은 비엔날레관과 양림동 지역을 아우른다. 우선 비엔날레관 전시는 '부딪침 소리(feedback Effect)', '겹침 소리(polyphony)', '처음 소리(primordial sound)'라는 세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부딪침 소리란 두 개의 소리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불협화음과 충돌의 패턴을 지닌 소리다. 겹침 소리란 다양한 구성체들과의 소리가 어우러진 관계의 패턴을 지닌 소리이고, 처음 소리란 분자나 세포처럼 원초적 존재의 패턴을 지닌 소리를 가리킨다. 판소리의 두드리고 아우르는 마당을 차용해 사람과 기계와 동물과 영혼과 유기체들이 내는 세음(世音)을 읽어내려는 예술감독의 의도가 신선하다. 진입 동선에서 전시 디자인에 이르는 연출의 세련됨도 대가의 면모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양림동 지역 프로젝트도 이번 비엔날레의 본전시로 주목해야 한다. '영토로서의 예술작품'이라는 제명으로 추진된 이 전시 영역은 광주 양립동 일대의 옛 파출소, 폐가, 사립 갤러리와 예술가 스튜디오 등을 포함하고 있다. 비엔날레를 방문하는 관객들이 이 모든 장소를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지라도, 선택과 필요에 따라 작은 일상과 기억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미술의 축제는 큰 관계망을 형성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비엔날레는 문화의 실험실이자 문화적 쟁의의 장치라 불린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은 언제나 동시대의 담론들이 등장하고 파동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미술관과는 다른 비엔날레의 속성이다. 부리오에 따르면 21세기의 지구촌은 분쟁, 이주, 차단, 장벽, 봉쇄, 분리 따위의 정치적 공간이자 기후변화, 사막화, 동물생태, 외래 식물종의 침범 등으로 묘사되는 야생의 공간이다. 비엔날레에 주어진 화두들이다. 비엔날레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비엔날레의 힘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비엔날레가 제대로의 위상을 회복해야 하는 시기에 제15회 광주비엔날레는 향후 비엔날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하나의 사례로 다가온다. <김영호 미술사가·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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