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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2) 5·16도로~수악도시숲~수악~수악길~신례천변~4·3수악주둔소~신례천 생태숲길~이승이악~목장길~이승이악 탐방휴게소
선선한 솔바람 부는 맑은 날, 마음껏 누빈 시월愛 숲
임지현 기자 hijh529@ihalla.com
입력 : 2024. 11.08. 03:00:00

지난달 19일 진행된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2차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4·3수악주둔소를 둘러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내성과 외성 이중으로 거대하게 구축된 4·3수악주둔소는 4·3유적지 중 처음으로 국가지정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오승국 시인

수악과 이승악 정상서 풍광 만끽
신례천 주변엔 다양한 문화유적
고난의 세월 보여준 4·3주둔소도




[한라일보] 재빠르게 사라질 시월이란 말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심연의 사유로 인해 그냥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높은 하늘 아래 선선한 솔바람 부는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을 느끼며, 우리들의 삶은 그만큼 허걱거리며 연말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시월의 숲은 아직 단풍에 이르지 못한 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고, 한 해 동안 달고 있던 나뭇잎을 조용히 떨구어 내고 있다. 오름과 곶자왈에 식생하는 대부분의 나무가 활엽낙엽수다. 단풍은 추운 겨울을 버티고 설 낙엽수의 마지막 찬란한 축제다. 11월 단풍을 기대한다.

지난달 19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4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12차 행사는 시월의 가을을 노래하며 2곳의 오름과 둘레길, 신례천변, 목장길 등 14㎞를 걸었다. 특히 이날 트레킹은 서귀포시 남원읍 하례리에서 신례리로 이어지며 신례천과 남원서부 곶자왈을 넓게 품은 수악(물오름)과 이승악(이승이오름) 등 2곳의 오름 정상을 볼 수 있었다. 오름이란 이름보다 악(岳)으로 불리워진 걸 보면 오름의 높이보단 마을까지 이어지는 넓은 대지의 품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한낱 오름이 아닌 거대한 산처럼 느꼈기 때문이리라.

된장풀

산물머위

소혀버섯

5·16도로 둘레길 입구에서 수악을 향해 숲으로 들어섰다. 서어, 졸참, 황칠, 산딸, 때죽, 단풍나무 등 활엽낙엽수가 즐비하고, 70년대 조성된 삼나무 숲이 혼재돼 자연림과 조성림의 아름다운 화음을 보는 듯 했다. 최근 산림청은 수악 도시숲을 조성해 탐방길과 편의시설 등을 마련했다. 도시숲(Urban forest)은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에 의해 영향을 받는 공간 내에서 자라는 숲 또는 공원녹지 등을 이르는 말이다.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하는 것도 주요한 기능이다.

가을새의 청량한 소리를 들으며 잘 정비된 도시숲의 탐방로를 걷다보니 벌써 수악오름 정상이다. 북쪽으로는 한라산이 믿음직스럽게 우뚝 서 있고, 남쪽으로는 제지기오름, 지귀도, 섶섬, 칡오름, 영천오름, 문섬, 범섬, 삼매봉, 미악산, 고근산 등 오름과 서귀포 앞바다의 지귀, 섶, 문, 새, 범섬 등 5형제 섬들이 한 눈에 펼쳐졌다. 파노라믹한 극강의 풍광이다.

별나팔꽃

너구리꼬리이끼

검은비닐버섯

다시 한라산 둘레길로 나와 신례천 숲길을 걷다보니 고대의 석성처럼 4·3주둔소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4·3수악주둔소는 1950년 초 경찰주둔소로 구축됐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해서 쌓았으며, 외성에는 회곽도도 설치했다. 이곳 조성 작업은 인근 신례리와 하례리 주민은 물론 서귀포의 상효동 주민들까지 동원돼 피땀으로 구축됐다. 성을 쌓은 후 주민들은 경찰토벌대의 지휘 하에 토벌을 다녔는데 인근 마을에서 올라와 이곳에 집결하고는 토벌작전에 투입됐다고 한다. 4·3 당시 고난의 세월을 보여준다. 이곳은 4·3유적지 중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다시 걷는다. 신례마을에서 조성한 신례천 생태숲길은 이승악까지 이어진다. 신례천은 좁은 협곡과 깊은 계곡에 난대상록활엽수가 잘 보존된 하천이다. 특히 구실잣밤나무, 붉가시나무, 모새나무, 참꽃나무 등이 군락을 이뤄 식생하고 있다. 주변에는 울창한 나무로 인해 '해를 볼 수 없다'는 해그문이소(沼), 잣담과 구분담, 숯가마 등 다양한 자연과 문화유적을 만날 수 있다.

4·3 당시 애잔한 눈물의 이야기가 전하는 '화생이궤'가 보인다. 4·3 당시 신례리와 의귀리 주민 20여 명이 피신해 숨어 있었으나, 군인 토벌대에 잡힌 한 어머니의 이야기가 눈물을 머금게 한다. "나를 죽여도 좋으니 이 아이만은 살려 달라. 이 아이를 하효리 외갓집에 맡겨주오." 군인들은 어머니를 그 자리에서 총살하고 아이는 살려주었다.

오래된 팥배나무와 삼나무, 졸참, 서어, 단풍나무가 즐비한 이승이악 동쪽 둘레길에는 일제강점기 진지동굴과 다양한 화산석들이 눈길을 끈다. 동쪽 등정코스로 오르는 이승이악은 험한 바위로 이뤄진 악산의 모습이었다. 수악에서 보는 경관과 또다른 아름다움이었다.

신례리 마을목장의 푸르른 초원과 소 떼들의 평화스런 모습을 뒤로 하고 오늘 걸음의 마지막 종을 울렸다.

다시 만난 친구여, 화생이궤에서 아들을 살리고 억울하게 죽어간 어머니를 위해 다시 한번 진혼곡을 불러주오. 그리고 그 슬픈 역사와 작별하지 않기를 함께 다짐합시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처럼.

< 오승국 시인/ 제주작가회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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