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용마루동산, 제안이동산으로 맥을 이루어 사방이 소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던 땅. 원래 고유지명은 송냉이(松浪伊)로 불리우던 곳이다. 1891년에 작성된 말방애접(接) 회의록에 등장하는 마을 이름이 송랑동이다. 지금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송림이 울창하던 마을이었던 모양이다. 서쪽에 와개왓(瓦蓋田)이 있어서 삼별초 입도 당시에 군량미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근거로 여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700년 전으로 보고 있음이 타당하다. 용흥리라고 하는 마을 명칭에는 풍수사상이 짙게 깔려있다. 신령스러운 한라산의 기운이 힘찬 용맥을 타고 흘러들어 회룡음수형(回龍飮水形) 명혈대지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조상 대대로 믿으며 자긍심을 키워온 마을이다. 강봉우 이장 애월읍 중앙에 위치한다. 북쪽 신엄지에서 1953년 분리된 마을. 동쪽으로 장전리, 서쪽으로 상가리와 하가리, 남쪽으로 소길리가 위치한다. 토박이가 주민의 99%라고 하는 경이로운 인적 구성을 가졌다는 것은 그만큼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강력한 결속력을 의미한다. 마을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용흥리의 자부심은 감귤과 관련되어진 내용들이 많다. 산북 지역에서 감귤농사로 일찍 전환하여 태생적 근면성을 바탕으로 부농의 꿈을 이뤄낸 삶의 궤적들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살아있는 마을의 역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주시로 고등학교에 진학을 해서 자취방을 얻어주는 것이 아니라, 집을 하나 사버렸었지.' 마을 사람 대부분이 교육문제 때문에 제주시에 집을 하나 정도는 마련했던 시절을 회고한다. 농업경쟁력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풍요를 이뤄내는 과정은 눈물겨운 도전과정을 극복하고 이뤄낸 성과. 용흥리 감귤 품질에 대하여 왕성한 자부심을 GAP인증마크가 보증한다. 맛으로 승부를 거는 감귤영농. 밭농사에서 감귤로 일찍 전환하여 오랜 기간 축적된 노하우가 이뤄낸 맛이라고 객관적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풍토적인 연유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음은 무시할 수 없고. 강봉우 이장에게 용흥리가 보유한 가장 큰 자긍심을 묻자 "인정이 살아 있지요!" 마을 결속력과 단합심으로는 결코 어떤 마을과 견주어 뒤지지 않고 있음을 이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다. 애향심에서 비롯한 마을 경쟁력은 승부근성과 같은 심리가 뿌리내려 있다는 것이다. 그 증거로, 면적이 협소하고 행정리로 분리된 연혁이 짧지만 꾸준하게 마을 공동재산을 만들어왔다는 자부심이다. 다른 마을들이 마을 공동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땅을 파는 경우가 있지만 용흥리는 주민들이 돈을 모아서 마을 땅을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용흥리운동장을 대표적인 사례로 상동과 하동 주차장, 연못들과 주변 땅들을 사들여서 마을 소유재산으로 만든 것이다. 이러한 객관적 사실들이 '작지만 강한 마을'이라는 입증근거로 작용하는 것이다. 다양한 마을만들기 사업을 통하여 경쟁력과 마을공동체 역량을 강화하여 오는 과정에서 얻은 자신감은 지극히 미래지향적 마인드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쉽게 표현하여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용의 기상이다. <시각예술가> 힐링 농로를 따라 <수채화 79cm×35cm> 용마루 가는 길 <수채화 79cm×35cm> 저 언덕에 오르면 한라산이 웅장하게 보인다. 그것은 지금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더 높은 곳을 향하라는 예시이기에 그렇다.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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