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삽화=배수연 산뜻하고 간략한, 어떤 정신성을 띤, 하지만 하고 있는 말이 시인이 감지하고 있는 것의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하지 않은 말이 무엇인가, 라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시를 읽는다.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는 순간에 문득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는 깨달음이 이는데, 두 사실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 없는지 확연하게 서술된 것도 아니다. 이 간략함은 보이지 않는 심연 속의 '말'이 현실적인 제약을 벗어난 채 "무엇인가"와 "영원"을 만난 기억에 간직되어 있다는 것을 전할 뿐이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그저 인간에 대해 쓰고 있다"고 했다. 그것이 영원히 지나가버렸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고 있음에도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자에게 밥이란 고통을 연장시켜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때로 과거나 현재가 아니라 미래 쪽에서 오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또 살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밥을 먹어야 한다. "그저" 인간에 대해 쓰고 있듯이 "그저" 밥을 먹고 있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이다. 인생이라는 영원할 수 없는 초라한 웅덩이에서만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갸륵한 인생을 기다릴 수 있는 법이다. <시인>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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