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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택의 한라칼럼] 입산봉에 깃든 역사문화를 찾아서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4. 11.26. 04:00:00
[한라일보] 제주역사문화 공유를 통한 자원봉사 영역을 넓히려, 제주시자원봉사센터에서 운영하는 '볼런투어'안내 차 구좌읍 김녕리의 입산봉을 다시 찾았다. 김녕리에는 역사문화 관련 유물유적이 많은 편이다. 선사유적지인 궤네기굴, 할망당과 하르방당, 전설 깃든 해저 두럭산 해안과 환해장성, 김녕뱀굴과 만장굴, 제주향교 분교로 여겨지는 김녕정사와 별방진성의 전신인 김녕방호소, 향토유산으로 지정된 묘산봉 근처 광산김씨 입도조 묘역 등. 그중 압권은 봉수대 안내비와 금경산(禁耕山) 마애명이 있는 입산봉 이야기일 것이다.

모양이 마치 삿갓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다 하여 삿갓오름으로도 불리는 입산봉은, 높이가 85미터로 야트막한 오름이지만, 굼부리 안은 매우 넓은 편이다. 입산상유연지수(笠山上有蓮池水)라는 기록이 말해주듯, 아주 오래전 굼부리에는 연지가 있었고, 100년 전후에는 연지가 논밭이 됐고, 지금은 밭으로 변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과 탐라지초본(1843) 등에는 '입산봉 봉우리에는 연지가 있다(봉두유연지峰頭有蓮池)'라는 기록이, 특히 이익태 목사의 지영록(知瀛錄, 1696)에는 다음의 글이 있다. '김녕촌 입산(笠山)의 봉수대에 올랐다. 산의 모양은 둘레가 몇 리가 넘는데, 마치 솥 모양과 비슷한 분화구에는 연꽃과 수련이 자란다. 수심은 그리 깊지 않으나 진흙 웅덩이가 매우 깊어 반드시 뗏목을 타고 잠녀들이 물속으로 자맥질해서 수련(연근)을 캐 관에 바친다.'

오래전 제주25봉수의 하나인 입산봉수는 한동리의 왕가봉수와 함덕리의 서산봉수와 교신하던 통신망이었고, 굼부리에서 자라던 특별한 연지는 관의 재산이었다.

1850년 경 길 잃은 큰 고래가 김녕해안에 떠올랐다. 당시엔 고래도 관가 소유였던 지, 고래 고기와 기름 일부를 마을사람들이 사용했다 하여 관에서는 마을에 벌금을 매겼단다. 돈이 필요한 마을에서는 입산봉을 이웃마을(조천) 절집에 팔았고, 해방 이후 마을유지들은 이곳을 다시 사들였단다. 이후 정상 주변은 공동묘지로, 굼부리는 개인 땅이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주 오래전 굼부리에서 자맥질하며 연근을 캐던 잠녀의 모습을 연상하며 오르내렸던 정상 둘레에는 수많은 묘역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1894년 이후 더 이상 봉홧불을 올리지 않던 봉수대 주변은 서서히 사자의 유택으로 바뀌어갔던 것이다. 망자들의 수많은 유택으로 변한 이곳 주변은 '묘역 참배길'을 내어도 좋은 만큼 다양한 형태의 무덤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조성되고 있었다.

입산봉에 깃든 역사문화를 나누며 정상을 오르내린 일행들은 주인 허락을 얻고선 굼부리 탐방에도 나섰다. 굼부리에 조성된 조그만 연지와 안내문을 보며 새삼 입산봉에 깃든 역사문화를 실감하기도 했다. 이렇듯 역사문화가 깃든 현장답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높이는 기회로도 작용되고 있으니, 이 또한 봉사영역을 넓히는 의미 있는 길이라 여겨본다. <문영택 귤림서원 원장·질래토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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