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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마당]4·3영화 '목소리들'을 관람하고 나서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4. 12.02. 06:30:00
[한라일보] 얼마 전 제주4·3영화제의 개막작인 '목소리들'을 관람하기 위하여 영화관을 찾았다. 개막작이라 그런지 영화 상영관 주변은 분주하였는데,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친척 한분이 인사를 한다. 제주에서는 의외의 장소에서 예기치 않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개막식과 영화 상영에 이어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다. 영화에 나오는 할머니의 아드님이 나오셔서 어머니에 대한 감회와 감사의 말을 전한다. 박수와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목소리들'은 4·3의 경험을 여성의 시각으로 구성한 다큐멘타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그 당시를 증언하는 인터뷰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제주의 풍경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서우봉과 토산리 집단학살 사건을 중심으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 강제 노동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증언한다. 여성의 수난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는 영화로서는 이 작품이 처음인 것 같다.

이 영화의 영상 구성과 이미지들은 안정적이고 탄탄하다. 이 영화는 4·3영화에서 흔히 경험하는, 분노와 슬픔의 감정으로 급박하게 치닫지 않고, 생존자들의 증언을 찬찬히 생각하게 하면서 몰입하게 한다. 이전의 몇몇 4·3영화들과는 다르게, 이러한 호흡은 감독이 4·3과 감정적으로 덜 연루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이 영화는 김은순 할머니의 침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녀는 토산리 학살 사건 당시 언니와 함께 끌려갔으나 혼자 살아 돌아왔다. 거칠고 낮은 숨소리, 내면에 갇힌 의식, 이가 부딪히는 경련 등의 증상은 그녀가 아직도 4·3을 경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에게 말을 건네지 말라고 한다. 그녀는 4·3에 대해 말할 것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침묵으로서 더 큰 것을 전달하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사태의 '전달될 수 없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녀의 움직임 표정 등등의 비언어적인 것으로부터 우리는 그 당시를 추측해본다.

김은순 할머니의 경우를 보면, 과연 4·3을 온전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4·3예술은 증언과 고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4·3의 예술적 형상화의 밑바탕에는 역사적 사건은 재현 가능하다는 미학적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할머니 모습을 보면, 4·3은 부분적으로 혹은 파편적으로밖에 재현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전제하에, 4·3예술에 대한 새로운 형식과 내용이 가능할 것이다. 4·3예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작자는 4·3을 경험했던 한 할머니의 증언이 잊히지 않아서 이 영화를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몰라.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몰라. 그냥 무서워. 무서워서 지금도 몸이 팍팍 떨려." 무섭고 몸이 떨린다는 할머니의 증언은 당시의 공포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한 할머니는 당시의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를 모른다고도 말한다. 4·3예술에서 많은 부분 여성들은 주변적 존재로 묘사된다. 소설 '순이삼촌'에서처럼, 여성은 역사적 언어를 갖지 못하고 침묵을 강요받는다. 그것은 남성중심주의 사회와 역사의 결과이다. 제주에서 여성은 4·3 국면에서도 많은 사회적 발언과 행동을 보여주었다. 4·3예술이 여성들의 목소리를 찾아서 역사성을 획득하게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제주4·3영화제는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이다. 작년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비념', '수프와 이데올로기' 등의 작품이 생각난다. '비념'은 4·3의 정서를 녹여낸 풍경이 인상적이었으며, '수프와 이데올로기'는 가족의 시선으로 이념을 넘어서는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수작이다. 앞으로도 4·3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줄 영화를 만날 것을 기대해본다. '목소리들' 영화 상영이 끝나고, 감독이 할머니들에 대한 감회를 얘기하는데 너무 흥분한 것 같았다. 나도 영화관을 나서며 착잡한 감정을 수습하느라 마음이 분주해졌다.<양철수 인문예술연구소 양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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