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108] 3부 오름-(67)좌보미, 평평하며 높고 물이 있는 오름
좌우 봉우리라서 좌보뫼? 우스꽝스러운 해석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4. 12.17. 03:00:00
우연한 유사성만으로 지명을 해석

[한라일보]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산6번지, 표고 342m, 자체 높이 112m다.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한좌보산(閑佐甫山), 1653년 탐라지와 1864년 대동지지 등에 한좌악(閑坐岳)이 기록된 이래, 좌보산(左甫山), 좌부악(左釜岳), 좌보악(左輔岳) 등이 검색된다. 오늘날 네이버지도에 좌보미, 카카오맵에 좌보미오름으로 표기하였다.

지명 좌보미가 무슨 뜻인가? "좌·우에 봉우리가 있어 처음 '좌보뫼'라고 했다가 '좌보미'로 변형되어 불리게 된 것이며, 한자표기화에 의해 '좌보악(左甫岳)'이라고 표기하게 된 것" 제주도가 발행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좌우에 봉우리가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니 이런 우스꽝스러운 설명이 어디 있을까? 좌우, 우좌, 앞뒤, 안팎, 상하 이런 위치 개념은 기준이 정해진 후라야 정할 수 있는 문제다. 과연 좌보미에서 이런 이름이 가능할까?

좌보미오름과 알오름들이 보인다. 월랑지는 좌보미 왼쪽에 있으며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다. 김찬수

또 어떤 연구자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 이 오름을 일찍부터 한좌보미라 부르고 한좌보산(閑佐甫山), 한좌악(閑坐岳)으로 표기한 것으로 봤다. 그러면서 한좌보산은 한좌보미의 한자차용표기로서, 한(閑)은 한의 음가자 표기, 좌(佐)는 좌의 음가자 표기, 보(甫)는 보의 음가자 표기, 산은 뫼의 제주어 미의 훈독자 표기라 했다. 좌보미는 좌보+미의 구성인지. 그 자체가 하나의 어휘인지 확실하지 않다고도 했다. 확실하지 않다면서 어떻게 음가자인지, 훈독자인지는 단정할 수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선 이런 설명에서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미'가 산을 지시하는 제주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미'란 제주어에서 물을 지시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앞 회를 참조하실 수 있다.

알오름, '알 모양', ‘귀엽다'는 뜻은 없어

좌보미란 '좌+보+미'의 구성이다. 여기서 '미'는 물 혹은 물이 있는 곳을 뜻한다. 나머지 '좌+보'에서 '보'란 말은 바리메 편에서 밝힌 바 있다. 바리메는 '바리+메'의 구성이다. '메'는 물을 지시하므로 '바리'가 문제가 된다. 기존의 설명은 주로 스님의 공양 그릇과 같이 생겼다는 뜻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이 말은 '불룩한', '부풀어 오른 부분'을 나타내는 말이며, '큰'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고 풀었다. 좌보미의 '보'는 바로 이 '바리'와 같은 어원이다. 다시 찾아보는 번거로움을 덜어드리기 위해 다시 설명해 보자. 트랜스 유라시아어 공통 조상어는 '보레(p῾ṓre)로 추정되고 있다. 퉁구스어권에서는 '풀-'에서 기원한다. 그중 오로크어에서 '풀루'라하고, 여타의 언어에서는 다소 멀어진다. 몽골어권에서는 원시 몽골어 '불-'을 공통 어원으로 분화했다. 할하어에서 '불르', 부리야트어 '불라' 혹은 '불루', 칼미크어에서 '불러'에 대응한다. 우리말에서는 '불룩하게 부풀어 있다'의 뜻으로 쓰는 '부르다', '부른' 등이 대응할 것이다. 제주어로는 '불룩하다'가 가장 근사하다. 좌보미의 '보' 역시 이 말에서 기원했다. '바르(바리)', '볼(보-)', '불(부-)' 혹은 이와 비슷한 음상으로 쓰였을 것이다. 이것을 글자로 표기하자니 '보' 혹은 '부'를 동원하게 된다.

월랑지(오름), 진남못이라는 넓은 못이 월랑지(오름) 바로 동남쪽에 있다.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 김진

이 오름은 과연 불룩하거나 큰 오름일까? 주위에 여러 개의 알오름이 있다. 알오름은 알처럼 둥글다는 뜻으로 붙이거나 귀엽고 작다는 뜻으로 붙인다고 풀이한다. 그러나 실은 '알 모양'이라거나 '귀엽다'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이 말은 '작은'의 뜻이다. 아주머니, 아저씨, 아시(아우)와 기원이 같다. '앛-'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아끈다랑쉬 지명에서 볼 수 있다. 돌궐어 기원이다. '알'은 어제를 의미하는 경상방언 '아래'에서 볼 수 있다. 제주 지명에 나오는 '알'은 이같이 작다는 뜻이다. 몽골어 혹은 퉁구스어 기원이다.

‘좌’는 마루라는 뜻, ‘자’에서 파생

좌보미의 '좌'는 무슨 말인가? 이 말은 '자'에서 파생한 말이다. '자'란 '지(旨)'에서 온 말로서 '마루'를 의미한다. 요즘 한자자전에서는 이런 풀이가 없지만 1576년 간행한 신증유합(하)에는 '마라 지'로 설명했다. 문제는 이 '마라'가 무슨 말인가이다. 우리 국어에서는 ① 마루(房), ② 등성이(산), ③ 으뜸(마루 종(宗), ④ 마라 지(旨) 등으로 쓴다. 이 네 가지를 우리 국어에서는 같이 발음하므로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국어의 특징일 뿐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주변어 즉, 트랜스 유라시아어, 일본어, 아이누어 등에서는 다르게 분화했다. 기원도 다르다. 좌보미에서는 넷째의 마루를 의미하는 지(旨)를 차용했다. 실제 의미는 뜻 혹은 성지(聖旨)이다. 그 의미를 생각하지 말고 그저 훈의 발음 '마루'만을 차용한 것이다. 이런 방식을 훈가자라고 한다. 좌보미가 윗부분이 평평한 등성이를 가졌다고 해서 고대인들은 '마루'라고 한 것을 '마루 지(旨)'를 차용해 쓴 것이다. 퉁구스어 '물루', 일본어 '무네'와 기원을 같이 한다. 국어의 마루(지붕의 용마루)도 같은 기원이다. 제주어에서 '지', '자'는 혼용한다. 손자를 '손지'라고 하는 데서 볼 수 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좌보미 바로 옆에 월랑지라는 오름이 있다. 월랑지란 '달마루'의 한자 표기이다. 이 오름 곁에 진남못이라는 넓은 못이 있으며, 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오름은 좌보미의 일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우나 도로가 관통하면서 떨어져 있어 보인다. '달마라(달마루)'로서 물이 있는 평평한 오름이라는 뜻이다. 이 오름에 비해 높은 오름이니 좌보미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한좌보미란 주변 오름들에 비해 큰 오름이라는 뜻이다. 좌보미는 '평평한 마루로서 높고 물이 있는 오름'이라는 뜻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이 기사는 한라일보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ihalla.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문의 메일 : webmaster@ihall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