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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상철의 목요담론] 전통을 뛰어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서예
고성현 기자 kss0817@ihalla.com
입력 : 2024. 12.19. 06:00:00
[한라일보] 현대는 문화적 스펙트럼이 다양해지면서 예술에서 순수와 비순수, 고급과 저급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졌다. 그런 면에서 보면 근자에 민간풍 서체의 유행이나 현장 중심의 서예 퍼포먼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통적으로 소위 귀족 문화의 고급성에 가치를 두었던 서예가 일반적으로 대중의 취향에 자리를 양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서예를 향유하는 계층이 대중으로 확산되면서 나타나는 동시대적 현상이라 볼 수 있다.

한 가지 예를 보자. 얼마 전 강암서예학술재단(이사장 송현숙)이 k-팝 열풍에 힘입어 주최한 '한글서예변주전: 붓으로 쓴 우리말 노래'가 있었다.

전국 95명의 유명 서예가에게 애창하는 노래의 한글가사를 쓰게 하고 이를 전시, 출판했다. 그동안 궁체 일색이었던 한글서예에 작가의 개성과 민체의 필의(筆意)가 담겨져 서풍이 다양했다.

사실 민간 서풍의 작품은 서예의 순수성을 지키며 작업해 온 전문작가들의 시각에서 보면, 서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어색한 부분이 없지 않다.

그러함에도 예술수요층이 대중으로 확산돼 나타나는 작금의 분위기는, 오랜 역사를 관통해 온 서예의 전통심미가 대중의 취향과 혼융되면서 시대의 새로운 줄기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민간풍 서체의 태동은 현대미술에서 이미 키치(kitsch)가 수용된 것처럼, 오늘의 다원화된 사회에서 순수와 비순수를 뛰어넘어 서로 간에 공생을 예견케 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서예의 행위성을 기반한 현장필연(現場筆演)이다. 종종 시중의 각종 식전행사에서 보게 되는 대필(大筆) 휘호 퍼포먼스는 장욱(張旭)과 회소(懷素)의 취필기행(醉筆奇行)에 연을 둔 극적(劇的) 요소가 있다.

대중은 현대미술의 플럭서스, 다다이즘 같은 사조에서 보이는 전위적 퍼포먼스에 익숙한 터라, 서예의 새로운 태동으로 여기는 측면도 있다.

지금도 정통성에 반해 정적(靜的)인 숭고성의 개념을 깨뜨리는 움직임은 반서예적 운동이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전통과 현대가 혼융되고 예술의 경계가 허물어진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현대미술로서 서예가 이해의 영역을 넓혀야 할 단계에 이르렀음을 증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이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다 좋을 순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동시대 서예의 한 가지 현상으로 눈여겨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어쩌면 전통을 뛰어넘어 대중과 소통하는 이런 현상은 새 시대의 문을 두드리는 피치 못할 노크 소리일지도 모른다.

호불호(好不好)를 불문하고 문을 열고 안 열고는 각자의 자유다. 그러나 지켜왔던 형식이 지루하면 뭔가 새로운 걸 찾아 나섰던 예술의 생리는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양상철 융합서예술가,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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