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일보] 옛날, 흰 사슴이 모록궤에서 새끼를 낳아 길렀던 적이 있다. 그래서 마을 이름이 모롯밧(百鹿里)이다. 예전엔 겨울이 되면 사슴들이 여기 내려와 서식했다 해 녹하지오름(鹿下旨岳)이라 부른다. 오름 지형이 사슴과 많이 닮았고, 예전 이곳에 사슴이 많이 살았다 해서 거린사슴이라 한다. 한라산에는 사슴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노꼬메오름, 사슴이오름, 녹산장 등. 백록담은 흰 사슴이 떼를 지어 이곳에서 물 마시며 놀았다 해서 붙여졌다. 송악산 사람 발자국 화석 유적지에는 사슴 발자국이 있다. 서귀포 앞바다에 있는 문섬이 사실은 사슴섬(鹿島)이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 후기 이익은 "제주에는 사슴이 많이 있다. 다 잡아도 이듬해가 되면 여전히 번식한다. 바다의 물고기가 변해 사슴이 되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했다. 1702년 10월 11일 교래리 지경에서 이형상 목사 일행이 사슴 177마리를 포획했다(탐라순력도 교래대렵). 조선 시대 대표 진상품은 사슴이다. 녹용과 녹피, 대록피, 녹포, 혓바닥, 아석, 안롱 등이 있었다. 제주에서 매년 사슴 가죽 5~60령, 혓바닥 5~60개, 꼬리 5~60개, 말린 고기 200조 등을 진상했다(이형상, 남환박물). 사슴은 들판에서 맛있는 먹이를 찾으면 "유유~"하는 소리를 내어 주변에 있는 다른 사슴들을 불러 모은다고 한다. 다들 배고플 텐데 여기 와서 같이 나눠 먹자는 사슴 특유의 우애는 서로 더불어 공생하고자 하는 동족애이다. 사슴은 나눔과 상생, 화합과 공존의 지혜를 본능적으로 실천했다. 이를 '유유녹명( 鹿鳴)'이라 한다. 예전 정의 직세 위 선돌과 염돈 위 오름에 있던 두 화전마을 간 거리는 여섯 참(30리)이나 됐다. 그래도 가까운 이웃처럼 의지하며 긴밀히 지냈다. 고만고만한 살림에도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꼭 나눠 먹었다. 당시 도내 화전마을 화전민들 간에는 서로 협업하고 소통하며 상생하는 상호유대관계가 잘 구축돼 있었다. 제주 해녀들은 그날 해산물을 많이 잡지 못한 다른 해녀나 애기 해녀, 할망 해녀들에게 자기가 잡은 해산물을 서슴없이 나눠준다. 이른바 '게석'이다. 또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한 할망 잠녀들이 할망 바당에서 물질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줬다. 제주 해녀의 '따로 또 같이', 운명공동체 문화이다. '따로 또 같이(따또주의)'는 '개체적 대동주의'를 말한다. 개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생과 공존, 형평을 바라는 공동체 의식이다. 해녀의 전통물질, 마을 공동 바당과 공동목장, 화전(火田) 문화, 마을 설촌 유래 등에서 탐라의 따뜻한 공동체 정신을 찾을 수 있다. 어느 한쪽이 죽거나 둘 다 죽어야 끝나는 치킨게임만큼이나 극한인 요즘, 반드시 되새겨 봐야 할 제주 고유의 생존전략이다.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린 기성세대가 여전히 불확실성에 허덕이고 있는 미래 세대에게 희망으로 전해 줄 수 있는 참된 가치이며 공동체적 정신 유산이다. <진관훈 제주문화유산연구원 연구위원> ■기사제보 ▷카카오톡 : '한라일보' 또는 '한라일보 뉴스'를 검색해 채널 추가 ▷전화 : 064-750-2200 ▷문자 : 010-3337-2531 ▷이메일 : hl@ihalla.com ▶한라일보 유튜브 구독 바로가기 <저작권자 © 한라일보 (http://www.ihalla.com) 무단전재 및 수집·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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